중국, 사드때리기, 사회제국주의 세상을 보는 눈

사드배치 결정이후 중국의 노골적인 사드때리기 보복이 노골화되고있다. 초등학교 등 관을 동원한 한국상품 불매운동, 관용언론들의 한류 또는 한국상품 비판논조 등 어찌보면 치졸하기 그지없는 덩치만 큰 大國의 품격없는 행보다. 일찌기 동북공정에서 이미 중국의 배타적 민족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국제사회를 주도할 G-2 국가로서는 수준이 한참 떨어진다.

일찌기 서양의 많은 학자들이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이후 공산주의의 도미노식 몰락이 이어질때 중국의 배타적 민족주의 기류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예견했다. 공산주의라는 절대적 이데올로기가 붕괴되고, 년 10%대의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이 이어지면서 필연적으로 따라올 빈부격차문제, 도농격차, 소수민족 분쟁 및 이촌향도(도시집중화)에 따른 도시내 노동자의 빈한한 삶과 박탈감을 대체하기위한 정부차원의 이데올로기 작업이 본격화될 것인데, 바로 중화민족주의의 발흥이었다.

1990년대 중국정부의 민족주의 고취노력은 크게 두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시간과 공간의 왜곡작업을 통한 중화민족주의 발흥.

즉, 시간적으로는 중국의 역사를 기존의 삼천년에서 5천년으로 만드는 반만년 무구한 역사를 만드는 작업으로 단대공정이 그것이다. 내가 초등학교때만 하더라도 중국의 최초왕조는 은으로 시작해 주나라, 춘추전국시대, 진한,오호16국,수당송원명청이었다.
그 이전에는 전설의 왕인 황제와 요순임금 정도였다. 이렇게 될 경우 3000년 정도 역사밖에 안되며 이웃의 조그만 한국의 5천년 역사보다도 짧다. (물론 우리나라의 5천년도 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이 나라를 세운이후 1500년을 통치했다고 하니 사료에는 없는 신화속 역사를 근거로 내세웠을 뿐이다.) 그리하여 전설속 왕조인 하나라와 상나라(은나라)를 부활시켰다. 이름하여 하상주단대공정, 고대문명탐원공정이 시작되었다.

둘째, 공간에 대한 역사왜곡작업은 남방공정, 서남공정, 서북공정, 동북공정, 해양변강공정 등으로 지금도 계속되고있다. 이중 고구려사 왜곡으로 우리나라와 갈등을 빚은 동북공정은 1997년~2000년사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역사는 승자의 작업이라고 했던가?
조선시대이전만해도 고구려는 한반도에 위치한 삼국중 하나로 중국을 비롯, 일본 등 이웃국가들로부터도 한민족의 역사로 당연히 인식되었다. 그러나, 고구려영토의 2/3이상이 중국에 있으니 중앙정권-지방정권식의 논리로 설명하는 중국의 억지주장에도 설땅이 없다. 밉기도 하지만 중국이 잘하는 건 매우 전략적으로 조직적으로 공정작업을 진행해왔다는 것이다.

일찌기 등소평은 UN연설에서 "중국은 사회제국주의로 가지않을 것이며, 이럴 경우 묻 개발도상국들로부터 지탄을 받을 것이다"라고 연설을 했으나, 전형적인 도광양회(빛을감추고 힘을기른다)식 언변일 뿐이다.

모택동시대의 중국은 1949년 신장위구르를 침공해 1955년 공식적으로 자치구로 편입했고, 1950년 티벳의 인민을 해방시킨다는 명분하에 전격적으로 침공해 흡수하였다. 이후 등소평시대에는 1979년 베트남을 해방시킨다는 명분으로 베트남을 침공했으나, 패퇴되고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가 부르는 월남을 아직도 '남월'로 부르며 제국주의적 발톱을 숨기지않고있다.

1990년대이후에는 체계적인 공정작업을 통해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행보들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려하고있다. 앞으로도 동북공정작업에서 알수있듯이 북한체제가 붕괴하면 언제라도 흡수하려는 이데올로기와 행보를 보일 것임은 자명하다.

물론, 시진핑시대에는 우리가 잘알고 있듯이 해양변강공정작업에 이어 해양진출을 본격화하면서 일본과는 센카쿠열도(조어도) 분쟁, 베트남,필리핀과는 서사군도,남사군도 분쟁을 노골화하고있다. 물론 동사군도,남사군도, 서사군도 일대가 해양자원의 보고라는 막대한 경제적 가치도 있겠지만 중국의 전형적인 사회제국주의 시도라고 봐야할 것이다.



지금은 중국정부가 우리와 서해조업문제와 사드문제로 갈등을 빚고있지만, 중국의 사회제국주의적 행보로 볼때 앞으로 이어도를 놓고 갈등을 빚을 확률이 높다. 한국인들은 일본과의 독도갈등에는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있으나, 이어도와 관련한 중국과의 분쟁에는 상대적으로 긴장하지않고있다. 독도는 사실 우리가 실효지배하고있기에 그리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일본정부와 언론이 아무리 떠들어도 그냥 무시하면 된다. 그러나 이어도문제는 틀리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해양영토 확장을 노골적으로 부르짓고있기에
한중관계가 악화될 경우 앞으로 더욱 이슈화될 소지가 높다. 




중국지도부입장에서는 미국의 위협보다 중국의 노동자,농민,소수민족이 더 무섭다. 관민이 함께 외치는 배타적인 중화민족주의에 바탕한 사드때리기는 일회성으로 끝나지않을 것이다. 도광양회에 이은 유소작위적 행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미국을 끌어들여이이제이가 아닌 이강제강 전략을 취할 것인가? 차기 신정부가 아무 전략도 대책도 없이 사드배치 철회 등 중국정부에 납작엎드리기식 행보를 하지않을까 두렵다.


 

삼성, 재벌 그리고 인도 마르와리상인 세상을 보는 눈

최순실게이트, 박대통령 탄핵, 그리고 이재용 회장의 뇌물수수죄 연관성으로 온나라가 벌집쑤셔놓은 듯 뒤숭숭하다. 더구나 5.9 대선을 앞두고있어 당분간 삼성,SK그룹 등 재벌을 둘러싼 뉴스들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듯하다. 재벌의 정경유착문제를 어떻게 봐야할까? 준조세성격의 천문학적 기부금들을 정권과 재벌간의 Give & Take 차원식 해법으로 이해해야할까?  재벌은 과연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유한 현상일까?


수년전 우연한 기회에 인도를 다녀온 적이 있다. 뉴델리, 타지마할, 방글라데시 다카 등을 돌아보고 왔다. 11억에 육박하는 인구대국답게 거리마다 사람들로 넘쳐났고, 열대지방 특유의 눅눅함, 까무잡잡하면서도 느릿느릿한 인도인들, 공중화장실가는 길마다 널린 소똥들, 파리가 날라다녀 음식먹기가 곤란했던 식당들, 진동이 너무심해 멀미를 심하게 느껴 중간에 내리고만 싶었던 고속버스, 느려터진 호텔인터넷, 수시로 정전되는 사무실, 거품샤워중 물이 끊겨져 당황했던 추억들은 과히 좋지 못한 추억들로 남아있지만 글로벌 경제전쟁에서 중국에 필적하는 경제대국으로 성장중인 인도는 결코 무시할수 없는 존재다.   

 

물론 인도에 대한 짧은 여행경험으로 인도전체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는 쉽지않지만 인도경제를 큰 틀에서 바라보면 우리처럼 재벌(기업가집단)이 장악하고 있다고 볼 수 있고, 이들 기업가집단중 선두를 달리고 있는 상인그룹이 바로 마르와리 상인이다. 

세계 5대 부자중 한명인 락쉬미 미탈(아르셀로미탈그룹 회장), 인도 최대 글로벌기업 아디티 야비렐라 등이 모두 마르와리들이다.


마르와리 상인이 누군가? 인도 북부의 라자스탄 사막지대의 척박한 환경에서 활동했던 마르와리 상인들은 지금은 인도 전역에 걸쳐 약 3,000만명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들은 우리의 보부상이나 조선시대 송상, 만상과 같이 인도 전역에 걸쳐 자기네만의 결연의식과 자금줄을 활용해 지역경제계를 휘어잡고있다. 즉, 인도사회가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 등 크게 4개의 카스트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사실 그 안에는 수천개의 자띠(결연체)로 구성되어 있다. 자띠는 영어의 Community로 번역되기도 하고 우리의 혈연, 지연공동체와 비슷한 개념이나 이보다는 훨씬 더 결속적인 단어다.


마르와리 상인들은 인도 전역에서 고향과 수천킬로 떨어진 지역에서 장사를 하며, 고향에서 같은 마르와리 상인이 오면 자기들만의 신용으로 돈을 대부해주고 숙소도 제공해준다. 이로 인해 신출내기 마르와리 상인은 천리타향에서도 쉽게 기반을 잡을 수 있으며, 만약 돈을 갚지않는다든가 같은 자띠의 일원에 명예를 훼손하게되면, 그 자띠 전체 그룹부터 추방당하게 된다.


현재 마르와리 상인은 인도전역에 산재한 네트워크와 상호 연대로 인도 전체의 산업계 및 금융계, 유통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마르와리 상인을 비롯한 구자라티상인, 파르시 상인 출신의 대부호들은 인도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우리처럼 정권이 바뀔때마다 대선자금 스캔들 등으로 타도의 대상(?)이 되거나 온 국민들의 지탄을 받지않는다. 물론 마르와리 상인들이 사회에 엄청난 기부활동을 하는 등의 이유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카스트에 익숙한 인도인들에게서 마르와리상인들을 비롯한 거대 상인그룹들은 선망의 대상이지 타도의 대상은 아니다. 


재벌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다. 인도를 비롯해 전세계 어디에나 있고, 우리나라같이 시장규모가 작은 나라에서는 오히려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정권이 바뀔때마다 되풀이되는 재벌때리기, 이제는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한다. 


국제정치사에서 풀리지않는 수수께끼가 두가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전통적으로 돈을 숭상하는 중국인들로 가득찬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는 점, 둘째는 전통적으로 평등주의가 매우 강한 한국이 자본주의 국가가 되었다는 점이다.


조선초 10%에 불과하던 양반그룹이 18세기말에는 전국민의 80프로가 양반이 된 나라, 평민을 일컫는 상놈을 욕으로 쓰는 나라, 재벌을 그리도 미워하면서도 간절하게 삼성에 입사하려는 대학생들. 대한민국은 참 알수 없는 나라다.   

 





 



단군, 삼한, 조선, 고구려의 의미 세상을 보는 눈

어릴때부터 역사수업을 받으며 종종 느꼈던 궁금증

1. 단군은 누구이며 직책인가? 한명의 인물인가?
2. 朝鮮의 뜻은 무엇인가?
3. 三韓, 즉 마한변한진한의 韓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4. 고구려, 고려의 뜻은 무엇인가?

1. 단군은 누구인가?
흔히 역사책에는 기원전 2333년에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나라(고조선)를 세웠고 이후 1500년간 통치하였다는 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물론 환웅,천부인,웅녀 등 다분히 신화적인 스토리가 가미되어 실체가 없는 인물이 단군인데, 그렇다면 단군은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인가? 아니면 1500년간 조선을 다스리던 왕을 일컫는 직책인가?

여러가지 설이 분분하지만, 내가 보기에 단군은 하늘을 의미하는 당골, 당그리, 탱그리 등 고대 북방유목민족들의 용어를 음차한 것으로 보인다. Tengri(탱그리)는 지금도 몽골어로 하늘 또는 영혼을 의미하는 단어이며,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과거 징기스칸이 훝고지나간 유목민국가들에서 흔히 쓰이는 단어다. 징기스칸은 출정을 앞두고 탱그리에게 기도하는 의식을 가졌다고 한다.
 
현재 카자흐스탄의 화폐단위가 텡게이고,  아래 사진처럼 카자흐스탄 항공사잡지 이름도 하늘을 의미하는 탱그리이다.

사학계 일각에서는 바이칼호수 일대에서 붉은 가지를 가진 버드나무를 ’조선류‘ 또는 '쥬신류'라고 부르는데, 한반도에서 이곳까지 즉 북방유목지대 전체를  ‘쥬신(조선) 제국’으로 불렀다고 한다. 즉 고조선의 조선은 당시 '쥬신'을 한자로 음차한 것으로 봐야한다.
(일제시대때 상당수 우리나라 순수 고을이름들을 한자로 음차한 사례를 보면 이해가 된다.) 
다시말해 단군이라는 용어는 북방바이칼호에서 만주평원일대까지 걸쳐있던 쥬신제국을 통치하던 탱그리를 한자로 음차한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고조선때 단군이 1500년간 통치했다는 기록들은 북방유목국가에서 하늘, 천신의 아들 왕을 일컫는 용어인 탱그리를 한자로 음역한 것일 것이다.

다만, 탱그리가 우리나라 말중에는 당골이나 ㅆㅂ탱그리 등 다소 비하적인 말로 잔재하고 있음이 특이하다.

2. 朝鮮의 뜻도 마찬가지로 쥬신, 숙신과 비슷한 음차어로 보면될 것 같다. 굳이 조선을 "조용한 아침의 나라" "동방의 해뜨는 나라" 등으로 억지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머리만 아플뿐이다.

3. 三韓, 즉 마한변한진한의 韓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최근 소설가 김진명씨가 쓴 '한국사 X파일'을 보니, 삼한의 韓의 의미를 찾기위해 중국의 사서를 뒤져서 춘추전국시대의 韓, 또는 사서삼경에 나오는 韓 등으로 유추하고 있는데, 본인이 볼때 삼한은 당시 북방유목민족들의 용어인 칸의 나라라는 의미로 봐야할 것같다. 즉 칸, 한 등은 북방유목민족들 사이에서 왕을 의미하는 단어이며, 마한변한진한은 마칸(또는 마한)변칸,진칸을 한자로 음차한 것으로 봐야하며 유사음중에서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후국중하나인 韓을 차용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바이칼 호 인근 민족들의 공통된 신은 불한신이다. ’불‘은 밝음, 해 등을 뜻하고, ’한‘은 크다라는 뜻이다. 후에 징기스칸의 칸처럼 북방유목민 국가들에서 '한' 또는 '칸'은 대왕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였다. 따라서 삼한 또는 대한민국의 韓은 왕을 의미하는 칸의  한자식 음차어로 봐야할 듯하다.

4. 고구려, 고려의 뜻은 무엇인가?
터키는 자신의 조상이 바이칼호 일대에서 발원한 몽골-흉노족의 일원이라고 밝힌다. 일부 사학자들은 바이칼호 인근의 민족들중에 부리얏족, 코리족들이 있으며, 지금도 남아있는 코리족들은 고구려,고려 즉 코리아로 변형되었다. 터키인들은 코리아족을 자신들과 동일한 민족이라고 얘기하며, 6.25 참전시에는 형제국에 참전하러가자고 했다고 한다. 

'쿠리'는 흔히 19~20세기 미국에서 일하던 중국인 노동자들을 비하하는 용어인데, 사실은 '쿠리'의 어원이 '고려'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당나라는 고구려 평양성을 함락시키고 당시 평양의 백성들 30여만명을 당의 장안까지 강제로 끌고갔다고 한다. 당시 수십만명의 고구려유민들이 장안에 도착했을때 천리길을 가면서 제대로 씻지도 못했을테니 얼마나 냄새가 심했겟는가? 이들 유민들을 중국인들이 비하하며 부른 용어가 고려인을 의미하는 '쿠리'였고 노동자 천민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였다는 것이다.

미국 북서부를 여행하다보면 참 신기한 장면들을 많이 본다. 아래 사진들은 미 북서부 워싱턴주에 위치한 마운틴 레이니어 인근에 있는 장승들이다. 시애틀이나 올림푸스, 포틀랜드 등 일대를 여행하다보면 이러한 형태의 장승들을 종종 보게되는데 마치 우리나라 시골길에 서있는 장승들과 흡사하다.
 
더욱 신기한 것은 시애틀이나 포틀랜드 일대에 살던 인디언들이 우리처럼 도토리를 줏어다가 묵을 해먹는다는 것이다. 와이프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중에 소피아라는 백인이 있다. 우리집에도 종종 놀러오곤 했는데, 한인마트에서 산 묵을 보고는 인디언들이 도토리로 해먹는다는 것이다. 이들 인디언들을 보면 과거 빙하기때 또는 고구려가 망할무렵 베링해를 건너서 북아메리카로 이동한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믿거나 말거나.























증오를 없애고 치유를 시작하라! 세상을 보는 눈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종종 미국에서 가장 인기없는 대통령중 한명으로 치부된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결국 낙마(하야)하던날, 당시 부통령이었던 포드 대통령은 미국 최초로 선거없이 대통령이 된 최초의 인물이 된다. 그러나 닉슨이 하야한후 1달되던날 미국의 대통령인 그는 닉슨 전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발표한다. 물론 야당과 국민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다. 취임당시 70%를 오르내리던 그의 지지율은 사면발표직후 40% 밑으로 곤두박질친다.

그가 국민들의 인기를 바랬으면 닉슨대통령을 더욱 철저히 조사하여 파멸로 이끌고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분열된 America를 원하지 않았다. 닉슨의 하야 한달후 조건없는 사면을 통해 비록 그의 대국민 지지도는 하락할 지라도 미국의 통합과 발전을 위한 대국적 견지에서 상처입은 미국을 치유하려했다. "증오를 없애고 치유를 시작하라."

우리나라 같으면 정권이 바뀌면 항상 상대당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이 뒤따랐다. DJ,이회창 등 대선에 실패한 후보가 취한 최초의 행보는 미국 등 외국으로 도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국내에 있으면 무자비한 응징이 기다리고 있기때문이다. 노태우대통령때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백담사 유폐, YS 정권당시 노태우,전두환대통령 감옥행, MB정부시절 노무현대통령 스캔들조사 등등. 북한의 경우에도 김정은 집권후 장성택 처형, 김정남 암살 등 정적에 대한 철저한 응징이 뒤따랐다.
 
미국의 위대함은 여기서 나오는 것 같다. 일시적인 대중적 인기가 아니라 분열없는 미국, 상처받은 미국을 치유하기 위한 최선의 수를 지도자가 고민하는 것이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그리 영민한 대통령은 아니었던가 싶다. 그러나 미국의 아픔을 치유할 위기의 순간에 성실하고 솔직한 포드는 역할을 다하였다. 
 
제럴드 포드 전대통령의 장례식때 추도사를 한 사람은 대선과정에서 한때 그의 최대 정적이었던 지미 카터대통령이었다.
 
탄핵이 선고된 지난 며칠 뜻하지않게 사망한 사람만 3명 나왔다. 청와대를 떠나는 아쉽지만 P의 멋진 고별사를 원했으나, 역시 미국과 같은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식의 성경 Style식의 말은 사회분열만을 조장시킬 뿐이다. 차기 대통령은 제럴드 포드처럼 일시적인 국민들의 인기보다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대승적 판단을 내리는 인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설령 최순실게이트의 진실이 어떠하든, 북한인권법 통과시 북한에 물어봤다는 내용의 도서출판으로 궁지에 몰린 민주당의 차기승부수로 나왔든, 이제는 진실을 묻어두고 오로지 분열해소와 위기극복에 매진하는 후보가 나왔으면 좋겠다. 

증오를 없애고 치유를 시작하라! 역시 大國은 하루만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맥도날드는 부동산회사다? 세상을 보는 눈

"콜럼버스는 미국을 발견했고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을 건국했고 레이 크록은 미국을 맥도널드화했다."

미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회사중의 하나가 코카콜라와 더불어 맥도날드 햄버거이다. 전세계 얼마나 많은 매장을 가지고 있으면 주요 도시간 맥도날드햄버거 가격으로 물가를 비교하는 '빅맥'지수가 개발되었을까? (참고로 맥도날드햄버거는 전세계 120여국 이상에서 3만개 이상의 매장이 운영되고 있다.)

그럼 맥도날드햄버거는 도대체 누가 창업했을까?
시작은 맥도날드형제가 했지만 사실상 프랜차이즈화시킨 사람은 레이몬드 크록(편의상 레이 크록)이다.


레이 크록은 미 전역을 떠돌며 밀크셰이크 기계를 파는 영업맨이었다. 레이 크록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그는 원래 종이컵을 파는 영업맨이었다가 밀크셰이크 기계의 가능성을 보고 전직(?)을 했다. 오죽하면 그의 아내가 잘나가는 종이컵 영업맨자리를 놔두고 밀크셰이크 Sale을 하겠다는 그를 반대하며 말렸을까? 그의 인생역정을 살펴보면 플로리다에 부동산 투기바람이 일었을때 거액을 투자했다가 홀딱 날리기도 하고 여러번의 사업실패를 겪는 등 평지풍파가 많은 삶이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Something New"를 지향했다. 모든 레스토랑에서 글라스잔을 쓰던당시 종이컵이 나오자 그 가능성을 알아보고 과감히 종이컵 영업맨이 되었고 종이컵 산업이 번창하던 무렵 다시 밀크셰이크기 세일즈맨이 되었다.

당시만해도 밀크셰이크 기계는 매우 고가의 장비였다. 영업이 잘되는 음식점도 1~2개 비치할 정도로 고가였는데 캘리포니아의 어느 중소도시에서 8개의 밀크셰이크기계 주문이 들어오자, 레이크록은 그 음식점을 찾아가게 된다. LA 인근의 샌버나디오에 위치한 햄버거 음식점에 가보니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레이 크록은 그 성공요인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한다. 당시만해도 햄버거는 우리나라 치킨집처럼 맛도 제각각이고 주인에 따라 운영방식도 달랐으며 우후죽순격으로 난립했다. 다만 맥도날드 형제가 운영하는 햄버거가게는 다른 가게들과는 달리 약간의 혁신이 있었다. 먼저 매장이 무엇보다 청결했다. 쓰레기하나 없이 종업원들이 매장을 청결하게 운영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맥도날드형제가 마치 Ford식의 자동차조립라인 식으로 운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여러 잡다한 메뉴들을 정리해햄버거, 프랜치프라이 등 경쟁력있는 9개의 메뉴로 승부를 보았고 조리라인을 간편히하고 종업원이 주문받는 셀프서비스로 개편하는 등 매우 효율적으로 운용했다. 물론 햄버거패티도 다른 가게들과 차별화된 맥도날드만의 풍미를 가미했다.

멕도날드햄버거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본 레이 크록은 햄버거 가게의 성공가능성을 직감했다. 그의 나이 52살이었고 당뇨병도 앓고있었으며 그의 아내는 "늘그막에 무슨 고생이냐"며 줄기차게 반대했다.

가진돈을 모두 투자해 맥도날드형제와 프랜차이즈사업권을 사들인 레이 크록은 시카고 인근 '데스 플레인즈'에 프랜차이즈 1호점을 오픈했고 연이어 다른 지역에도 프랜차이즈 가게를 열게된다. 물론 맥도날드형제에게도 매출의 1%정도를 로얄티로 지불하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사업장이 늘어가면서 맥도날드형제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맥도날드형제가 프랜차이즈사업권을 다른 업자에게도 팔고 영업에도 사사건건 간섭하는 등 마찰을 빚은 것이다. 고심하던 레이크록은 뉴욕의 대부회사로부터 당시에는 엄청난 거액인 270만불을 빌려 맥도날드형제로부터 프랜차이즈 사업권 전체를 인수받는다.

이후 크록은 맥도날드 햄버거 체인점사업을 혁신화시킨다.
첫째, 모든 과정을 매뉴얼화시킨다. 물론 맥도날드형제 당시에도 매뉴얼이 있었으나 30여가지에 불과했다. 레이크록은 햄버거패티의 두께부터 조리법, 심지어 매장 카운터의 높이까지 미 전역 어느 영업점이나 동일하도록 매뉴얼화시켰다.

둘째, 미국내 어느 맥도날드체인점에서나 동일한 맛을 낼수있도록 운영진과 종업원들을 재교육시켰다. 당시 업계에서는 혁신적인 햄버거대학을 만들어 어느 매장에서나 일정 수준의 햄버거 맛을 낼 수 있도록 철저 교육시켰다.

셋째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넌싱 기법이다. 뉴욕의 금융기관으로부터 거액을 대출한 그는 미 전역의 부동산을 자신의 항공기와 자동차로 샅샅히 훝고다닌다. 도로망이 개설되면서 요지가 될만한 위치의 부동산을 매입하는 한편 일간지에 광고를 싣는다.
프랜차이지가 될 사업자라면 누구나 일정액의 투자금과 함께 맥도날드햄버거 본사가 소유한 영업점에서 영업을 하면된다. 조건은 매출액의 1%정도에 해당하는 임대료와 로얄티만 지불하면 되고 매장운영 프로세스는 본사가 재교육시켜주는 조건이다. 단, 사업자는 20년은 영업해야한다. 즉 맥도날드본사는 20년동안은 이자부담을 줄이면서 안정적으로 임대수익과 로얄티를 확보하게되고, 사업자도 20년간 안정적으로 영업에만 매진하면 된다.

부동산의 본질은 Income Gain과 Capital Gain이다. 즉 매월 일정수준의 Income(임대료)가 들어오고 몇년이 지나 매도했을때 자본차익(Capital Gain)을 볼 수 있으면 매우 훌륭한 투자법이다. 소위 요즘 주목받고있는 건물주는 Income Gain을 추구하는 자이고, 아파트 차익거래자는 Capital Gain을 노리는 자이다.

맥도날드햄버거는 유동인구가 많은 밀집지역을 타겟으로했기에 맥도날드매장이 들어오면 몇년후 상권이 커지게된다.
그럼 적정시점에 매장을 팔게되면 그동안의 운영수익+매매차익으로 소위 대박이 나는 것이다. 오죽하면 맥도널의의 최대 경쟁자인
버거킹의 입지전략이 맥도날드 매장의 앞자리에 차리는 것일까? 즉, 자기네는 맥도날드만큼 부동산입지를 보는 눈이 없으니 무조건 맥도날드 앞에 매장을 세우고 대신 햄버거 맛으로 승부하겠다는 발상이다. 바둑으로 치면 고수들의 흉내바둑이라고나 할까? 

누구나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레이 크록은 햄버거식당을 운영해본 노하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업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50대였고 주변에는 그의 와이프를 비롯해 말리는 사람밖에 없었다.
다만 모든 매장에서 똑같은 맛이 날 수 있도록 조리과정을 매뉴얼화시키고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려 부동산을 사고 다른 사람들의 자본과 매장을 열정적으로 꾸려갈 사람들을 모아 사업을 확장시켰다.

 "생각의 차이가 갑부를 만든다" 레이 크록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맥도날드는 부동산회사인가? 업의 본질을 말한다면 Yes라고 해야겠다.

레이 크록의 명언

‘푸르름을 간직하는 한, 당신은 성장한다. 완벽하게 성숙했을 때 당신은 부패하기 시작한다.’” 왠지 요즘의 시류에 딱맞는 말인 것 같다~~


 



교보문고 & 파웰 북스토어 & 스터디허브 한국 풍경

요즘 색다른 취미가 하나 생겼다, 내가 사는 동네에 교보문고가 들어온 것이다. 예전같으면 아침에 배드민턴치고 도서관가서 잡지책 뒤적거리다가 사무실가는게 일과였는데 요즘은 배드민턴치고 바로 교보문고로 직행한다. 여기에는 도서관에 없는 온갖 책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빈속에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며 때로는 갓구운 번을 뜯어먹으며 새로나온 신간들을 보는 재미가 여간 쏠쏠치않다. 

교보문고를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업가일수록 영리추구만을 우선할텐데 과연 이러한 전략이 먹혀들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사회 마지막 문화공간의 보루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고맙고 한편으로는 그 회장님의 마인드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큰 사업을 하는 사람은 생각의 폭도 틀린것 같다. 모름지기 사업가라면 한번은 꿈꿔야한다. 이 사회가 돈을 벌게해주었으면 다시 이 사회에 어떤 부분은 환원해주어야함을.


예전에 신문에서 교보문고 본점의 대형테이블을 본적이 있다. 5만년된 카우리소나무로 짠 대형테이블과 거기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묵묵히 책의 향연에 빠져있는 사람들, 내가 진정 아름답게 생각하는 문화공간이다.





물론 내가사는 일산의 교보문고에는 이정도의 대형테이블은 없지만 구석구석 책읽기 좋은 독서공간들과 스타벅스테이블이 구비되어있다.웬만한 독서실보다, 웬만한 도서관보다 더 공부하기 좋은 공간이다.



교보문고를 가면서 일전에 미국연수중에 자주 갔었던 파웰북스토어가 자주 생각이 난다. 파웰북스토어는 당시 내가 거주했던 포틀랜드에서 아니 미국 서부에서 제일 큰 중고서점이다. 특이한 점은 이 서점이 미 서부에서 가장 큰 그리고 유서가 깊은 중고책방으로 시민들이 자기집에 묵혀둔 책을 가져오면 그자리에서 책가격을 매기는 검수관이 책뒷면에 연필로 가격을 적어 되사는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운영했던 기억이 난다. 예를들어 30불짜리 소설책을 가져가면 책의 상태에 따라 값을 매겨적는데 8불정도 주인에게 주고 15불을 책 뒷면에 쓴다.


파웰북스토어는 우리나라 대형서점처럼 외관이 화려하지도 않지만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유명한 문화공간이자 약속장소를 정하는데 요긴한 랜드마크였다. 거리쪽에서 들어가면 잡지들이 비치되어있고 아기자기하고 책냄새가 물씬풍기는 서고들을 지나면 커피숍이 나온다.


당시 내가 파웰북스토어에 자주 가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일이었다. 당시 연수중에 다니던 학교 Lewis&Clark College의 도서관 모퉁이에서 어느날 인터넷서치를 하던중, 옆자리에 앉은 백인학생이 야후사이트를 이용해서 바둑을 두고있지않던가? 한편으로는 반갑기도하고, 한편으로는 신기해서 그 학생에게 어디에서 바둑을 배웠는가고 물어보았다. (미국에서는 일본기사의 보급노력으로 바둑을 Go라고 부른다) 생면부지의 그 어린 학생은 포틀랜드에도 고등학교 특활시간에 바둑을 가르치며, 학교안에도 바둑써클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그 학생이 일러준대로 일주일에 한번 바둑모임이 열린다는 이과대 교실에 가보니 그날은 바둑모임은 없었고 물어물어보니 대만출신의 수학과 교수가 바둑을 잘둔다고 한다. 결국 무대뽀로 대만교수의 방에 쳐들어가 바둑을 둘줄아냐고 물어보니 매우 반색하며 어디서 왔냐고 묻더니 나에게 바둑한수하자고 재촉한다. 급수를 물어보니 대략 5급정도 둔다고 해서 6점을 깔라고했더니 상당히 불쾌해하는 눈치였다. 결국 내가 한국의 정1급 치수(아마5단)이니 5점을 깔고두게되었고 중반쯤가서 너무 많은 돌을 잡아서 무안할 지경이었다. 그 교수와 몇마디 담소를 나눠보니 포틀랜드에서 나와 둘 수 있는 사람은 바둑클럽 멤버밖에 없다고 한다. 결국 집에 돌아와 인터넷검색을 해보니 마침 포틀랜드 Go Club을 찾았고 매주 2회 바둑모임이 있음을 알게되었다. 정규모임은 파웰서점에서 매주 화요일 저녁때있고, 비정기적으로 피자가게에서 열린단다. 당시 한국인 얼굴보기도 힘들었던때 알게된 바둑모임은 나에게 한줄기 서광과 같은 기쁨이었다.


여기가 파웰서점 1층에 위치한 커피숍으로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해 거리가 보이는 창문쪽에 앉아 백인골수멤버들과 바둑을 두었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포틀랜드는 비가 많이 내린다. 일년에 근 9개월은 우기라고 보면된다. 우리처럼 장대비가 쏟아지지는 않으나 날씨가 화창하다가도 어느새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대신 공해가 없고 녹지가 잘되어있기에 공기가 매우 청명하다. 오레건주와 스타벅스 본사가 있는 시애틀에 커피문화가 발달한 이유도 이러한 기후영향이 크다. 비오는날 거리밖을 바라보며 진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홀짝거리며 나의 호적수 나이얼과 바둑을 두던 기억이 아직도 싱그럽게 다가온다. 


나의 호적수 나이얼은 아일랜드계 백인으로 나보다 2살정도 어리지만 바둑실력만큼은 만만치 않았다. 내가 오기전 포틀랜드 최고의 고수였고 우리로 치면 강2급정도 두었던 것 같다. 나와는 두점에서 석점정도 사이 치수였다. 두점은 쉽게 잡지만 석점은 잡기힘든 실력이었다.(참고로 나의 바둑내공은 타이젬 7단, 미국AGA 공인6단이다)


나이얼과 벤, 그리고 몇몇 백인 아재들과 바둑 삼매경에 빠지다보면 어느덧 서점이 문닫는 11시가 되었다. 그러나 밤11시가 넘어가도 도무지 집에 갈생각을 않았다. 나이얼과 벤 그리고 백수처럼 보이는 두세명의 백인청년들은 나를 데리고 새벽까지 영업하는 인근의 호프집으로 데리고 갔다. 여기서 놀라웠던 점은 이 백인청년들이 한국의 기원에서 접했던 그 흔한 백수 아저씨들과 성향이 너무나도 똑같았다는 점이다. 오직 바둑만을 생각하며 세상의 다른일에는 초탈한듯한 진지함. 약간 Nerd하면서도 바둑에만 집중하는, 세상물정에는 초연한듯한 이들의 모습은 한국의 동네기원에 가면 밤샘바둑을 두거나 카드를 치던 백수아저씨들의 모습과도 별 다름이 없었다. 하여튼 이들의 아지트인 호프집에 가면 세네벌의 바둑판이 구석에 비치되어있었다. 희밋한 조명빛을 받으며 백인청년들과 흑맥주를 마시며 두던 바둑대국의 경험은 이전 파웰북스토어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홀짝거리며 두던 바둑과는 또다른 색다른 추억이었다.


사진에 보이는 왼쪽편 백을 잡은 친구가 Nial이며 오른쪽은 2점정도 약한 직업이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Ben이다. Nial은 직업이 바이올린 수제제작 명인이다. 원래는 오레건대에서 미술을 전공하다가 우연히 바이올린을 만드는 장인을 만나 직업을 바꾸었다고한다. Nial의 집에 방문했을때 나와 와이프에게 자기가 손수 만든 바이올린을 보여주며 바이올린 제작과정을 상세히 설명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의 바둑은 바이올린을 만드는 그의 세심한 성격만큼 매우 치밀했다. 한수한수마다 정성을 다해 두었기에 그와의 접바둑시 우숩게보고 두다간 큰코다치기 쉬웠다.  종종 판을 흔들기위해 정신없이 이리저리 두어가면 그는 국후에 "왜 한곳에 집중해서 두지않고 이곳두다가 저곳두냐"고 다그치곤했다. 성동격서작전이라며(Make noise at the East Gate While attacking the West Gate) 둘러대긴했지만 사실 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기 위한 한국식 흔들기 심리작전이었다.


여하튼 포틀랜드에서 파웰북스토어는 새책과 중고책이 공존하는, 새로움과 올드함이 함께하는. 다양한 책들과 팝앨범들, 진한 아메리카노 커피와 아기자기한 톡크, 그리고 바둑 등 이색잡기가 공존하는 매우 특이한 문화공간이었다.


최근 교보문고를 다니면서 문뜩 십여년전의 고색창연한 미 중고서점에서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고 내가 운영하는 부천사업장에도 이러한 공간을 만들수 없을 까 다시금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벽면에는 파웰북스토어를 약간 흉내내어 노란색책장과 판타지소설류로 채워넣었다. 조명은 북카페 분위기를 최대한 내기위해 레일조명으로 새로 깔았고 노란색빛의 전구를 일일히 달았다.  3600사이즈의 대형테이블은 교보문고의 가우리소나무 테이블을 참고로했으나 구현할공간이 너무 좁아 아쉬웠다. 대신 창쪽으로 상동사거리 조망이 가능하게 8Cm두께의 떡판으로 된 바테이블(3600사이즈)을 두개를 짰다.  
 



반대편에는 10여명 정도가 빔프로젝터를 투사하며 그룹스터디를 할 수 있도록 재배치하고 레일조명도 다시 깔았다.



근 한달여간의 낑낑거림속에 교보문고와 파웰북스토어의 아류공간들을 실험삼아 만들어보았다. 물론 1차적으로는 먹고살아야하니 나름 회의실 대관을 하면서 소문이 나는대로 책도보고 독서토론도하고 어학도 공부하고 영화감상도 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바껴가길 희망한다.


성주, 싸드, 그리고 이성량의 칙서정책 세상을 보는 눈

경북 성주 롯데그룹 소유지에 위치할 사드배치가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고있다. 북한 핵과 장거리미사일을 견제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까지 겨냥할 수 있는 위치라는 점에서 중국의 전방위적 공세가 만만치 않다. 안보이슈를 경제문제까지 연결하여 "줬다 뺏기 식"의 압박정책을 구사하고 있는 중국정부의 몽니는 사실 중국이 변방국들을 다루는 매우 전통적인 방식이었다.



명나라 말기, 성주이씨의 후손중에 중국으로 건너가 요동통수가 된 이성량이라는 장수가 있다. 성주 이씨 이천년의 8세손으로 추정되는 그는 조선땅에서 서자로 태어나 차별을 견디다못해 요동으로 건너가 명나라의 대요동정책을 총괄하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이성량의 아들이 그 유명한 이여송으로 임진왜란당시 조선을 도와 평양성전투, 벽제관전투 등을 치뤘던 장수다.

당시 이성량을 주목해야할 점은 그가 명나라의 요동정책을 총괄하는 대원수로서 만주평원에 산재한 건주여진, 해서여진, 야인여진, 거란족 등 東夷들을 당근과 채찍전략으로 효율적으로 견제했던 장수였다는 점이다. 사실 청태조 누루하치가 어릴때(어려웠을때)부터 그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여타 여진족의 군소부락들을 견제하는 사냥개로 쓴 이가 요동총독 이성량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요동총독인 이성량이 여진족을 상대로 쓴 방법은 칙서를 하서하는 것이었다. 칙서란 만주에 흩어져있던 여진족들에게 허가한 일종의 무역허가권이라고 보면 된다. 명은 세력이 큰 해서여진에게는 수십개의 칙서를, 세력이 약한 부족에게는 1~2개의 칙서를 주는 식으로 무역허가권을 주고 여진족들의 인삼,담비 등을 거래하도록 하였다. 당시 백두산일대의 인삼거래를 놓고 조선인과 여진족간의 치열한 분쟁이 끊이지않았고 누루하치당시에는 인삼거래의 주도권을 여진족이 가져가 거래를 독점하다시피 했는데, 당시 만주에는 동북지방의 인삼을 사려고 중국 전역에서 몰려온 상인들로 붐볐다. 누루하치는 이성량과의 연합작전와중에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죽게되면서 앙심을 품게되었으나 그 반대급부로 칙서 30개와 상당한 량의 은을 하사받았고, 후에 이는 그가 건주여진 전체를 통합하는데 든든한 재원이 되었으며 나아가 여진과의 교역에서 막대한 은을 지불한 명왕조가 멸망하는 원인이 된다.

이성량이 요동총독으로 있던 20~30년간의 기간중에는 보다 큰 해서여진을 견제하는 누루하치의 세력은 그다지 크지않았으나, 용맹하고 상황판단 빠르고 리더십있던 누루하치는 명이 제공한 칙서(인삼 등 교역독점권)을 토대로 건주여진과 나아가 해서여진, 야인여진, 그리고 몽골의 잔여부족들(오이라트 등)까지 통합하게 된다. 예상치 못한 누루하치의 급성장에 놀란 명(이성량)은 결국 칙서를 폐지하고 그간 명나라가 제공한 막대한 은과 교역권이 끊기게 되면서 리더십과 생존에 위기를 느낀 누루하치는 명을 공격하게 되고 그의 자손대(청태종)에 이르러 결국 명나라까지 삼키는 동북아정세의 파노라마를 가져온다. 물론 이자성의 난이라는 엄청난 천운을 토대로 산해관을 지키던 오삼계의 협력이 있기는 했으나 그이전 누루하치를 실질적으로 키운 이성량의 역할을 무시할수는 없을 것이다. 불과 20여만명에 불과한 여진족들의 수장이었던 누루하치가 당시 1억에 육박하던 명을 집어삼킨 것은 실로 천운이라 할 것이나, 여진족이 흥기하던 초창기 이성량의 줬다뺏기식 칙서전략이 나중에 커다란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킨 단초가 되었음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최근 사드배치를 바라보는 시진핑 정부의 대책을 보면 마치 명나라시절 동쪽오랑캐를 상대하던 이성량의 칙서정책을 연상시킨다.
한중무역량이 한미무역량을 초과하는 이순간, 일본인 관광객이 물러간자리에 몰려오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때아닌 잔치를 벌렸던 지난해 대기업들간의 "면세점 대전", 저임금을 바라보며 중국으로 몰려든 한국의 중소제조업체들, 어쩌면 너무나 커져버린 대중 경협의 레버리지를 자신들의 안보레버리지와 연계시키는 시진핑 정부의 최근 행보는  명말 이성량의 칙서정책과 너무나 유사하다.

가만히보면 시진핑정부는 다루기힘든 사나운 사냥개(북한)에 대해서는 석탄교역 중단, 대북중유 중단, 황금평,나진선봉지구 등의 교역루트를 통한 대북압박책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고, 또다른 東夷인 남한에 대해서는 롯데때리기, 자국내 관광객 한국방문 금지, 한류금지 등의 경제레버리지를 구사하려하고 있는데 마치 명나라때 건주여진,해서여진 등 동북방 오랑캐를 다루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있다. 한중FTA를 상호 호혜관계가 아닌 마치 황제가 조공국에 하사하는 특혜, 특히 동북방 오랑캐에게 주는 칙서로 생각하는게 아닐까? 

여진족들에게 칙서를 줬다가 뺐았다가 결국에는 역풍을 맞고 왕조까지 무너진 명나라처럼 시진핑 정부가 과연 과거의 전철을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벼락부자 졸부근성으로 충만한 이웃집 꼬맹이 남한을 다잡는 지팡구가 될 것인가? 지켜볼일이다.

다만, 17세기경 동북아정세는 명이라는 G1이라는 슈퍼파워 하나가 존재하였지만, 지금은 더 강력한 슈퍼라이온 미국이 버팅기고 있다. 미중간 안보,경제 전쟁에서 한반도는 또다시 새우가 되어 등이터질 것인가? 아니면 위기를 뚫고 동북아의 middle Power로 부상할까? 안타깝지만 후자의 가능성을 기대하며 차기정부의  New Face와 정책방향이 기다려진다.










김정남과 연환계, 미인계 세상을 보는 눈

김정남 암살이 최근 모든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주동자는 누가 보더라도 북한의 김정은임이 뻔하다. 그이유는 지금 이시점에 김정남을 죽여야할 사람은 지구상에서 김정은 한명이기 때문이다. 뉴스를 보면 인민무력부와 조직지도부, 정찰총국 등 북한내 김원홍 실각이후 과잉충성자들에 의한 시도라고까지 한다. 어쨋든 북한이 김정남을 암살한 수법을 보면 여자를 활용한 연환계로 보인다.
북한에서 매우 중요한 기념일(2.16 김정일 생일, 4.15 김일성 생일, 9.9 정권창건일, 10.10 노동당 창건일, 주식을 하는 사람이라면 요 4개의 기념일은 반드시 기억해야한다. 요날 꼭 미사일을 발사함)인 김정일 생일을 앞둔 김정은 입장에서는 적자인 김정남을 암살함으로써 북한내 지지세력을 더욱 공고히하고 장성택처형이후로 삐걱거리는 중국의 김정남옹위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미 역사적으로도 중국은 고구려 연개소문 사후시절 망명한 연개소문의 맏이 남생을 이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킨 사례가 있기에 김정은으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 북한이 김정일을 암살한 수법을 보면 요원들에 의한 직접적 공격(독침)보다 한단계 진일보한 수법을 보이고 있다. 일차로 평범하게 보이는 베트남,인도네시아 여자들을 이용함으로써 평상시 극도의 경계의식을 가졌을 김정남으로하여금 북한여자가 아닌 동남아 미녀라 쉽게 접근하게 만들어 순간적으로 무방비상태에 빠트렸다는 점, 배후국이 누구인지 모호하게 했고, 설사 시간이 흘러 진상이 파악되더라도 궁색한 변명을 내놈으로써 빠져나갈 여지를 남겨두었다는 점, 그러면서 간간이 배후가 남한이라는 둥 말도안되는 찌라시를 퍼뜨려 주변국들과 한국내 일부 무지렁이들을 매우 혼란시킬수 있다는 점(이미 중앙일보는 중국 웨이보에 떠도는 찌라시를 단독보도로 실어나르는 무지함을 선보임), 그러면서도 중 시진핑정부에게는 북한의 통치자는 김정은 하나뿐이라는 인식을 재삼 심어주고 혹시나 모를 북한내 장성택또는 김정남 잔당들에게 확실한 경고를 실현한점 등. 사실 연환계는 삼국지의 적벽대전에 나오는 수법이다. 삼국지 최대의 모사꾼 방통은 조조를 찾아가 배멀미를 심하게 앓는 조조의 수군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모든 배들을 고리로 묶게 현혹시킨다. 이후 누구나 알듯이 황개장군의 거짓투항으로 적에게 방심하게 만든 직후 화공작전으로 조조의 대군을 격파시킨다. 미인계를 이용한 연환계는 사도 왕윤이 미녀 초선을 이용해 동탁과 여포를 동시에 제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초선을 동탁과 여포에게 동시에 줄듯말듯 애를 태워 이간질시킨후 자중지란을 일으킨후 동탁의 양아들이라 일컫는 여포가 동탁을 치게한 사례다. 중국 역사를 보면 미인을 이용한 반간계 또는 연환계가 수없이 나온다. 오월전쟁 당시 서시를 오나라에 파견해 오왕을 미혹시키고 그 유명한 오자서를 자살케함으로써 적의 내분을 유도해 망가지게 한 사례 등.

이재용 구속과 명말 원숭환 사형 세상을 보는 눈

미쳐 돌아가는 작금의 현실을 살펴보면 마치 명나라 말엽 영원성전투에서 누루하치의 청군을 대파한 한족의 영웅 원숭환을 부관참시한 시대적 상황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당시 평안도 앞바다 가도에 주둔하며 온갖 해적 모략질과 환관에 대한 뇌물,아첨만 일삼던 모문룡을 직권으로 사형시켜 그에게 뇌물을 받던 환관들의 모함을 받은 명장 원숭환. 당시 환관들에 둘러싸여 국제정세라고는 무지한,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던 19살의 명 숭정제는 그에게 저자거리에서의 사형을 명한다.  결국 명나라는 산해관 방어선을 기본으로한 방어전에서 홍타이지의 청군에게 밀리더니 이자성의 난으로 망하고 만다. 이는 마치 임진왜란당시 이순신장군이 그를 온갖 중상모략했던 신하들과 선조의 미움을 사면서 백의종군된 사례와 유사하다.

최순실사태의 불똥이 박으로 튀면서 박을 구속시키려는 특검의 행보와 맞물리며 삼성,SK 등 대기업 총수들에게도 튀고있다. 경제보다 법적 정의를 운운하는 멋모르는 네티즌들의 성난 함성에 초가삼간 태우는줄도 모르고 불지르는 행태들이란, 정말이지 이 나라가 어찌 돌아갈련지. IMF시절의 고통을 벌써 잊었는가? 법이란게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라고 권력의 주도권을 쥔자들이 이해관계에 맞게 적용하기 나름이다. 법적 정의를 운운하는 이들은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재벌에 대한 반감만 갖고있는 무지랭이들일 뿐이다.  총성없는 경제전쟁의 시대에 나라 곳간은 비고있는 이때데 최일선의 장수들을 불러들여 명분론이나 따지며 구속하는 행태는 명나라 말기무렵과 다를게 무엇인가? 핀란드 노키아사태를 잊었는가? 거제도 조선산업 붕괴로 동네 식당들이며 여관들이며 지역경제가 마비되었는데 회사를 망하게 했다며 사장들을 다 구속시킬 것인가?  해외나가보면 삼성이나 LG 같은 기업들이 얼마나 위대한 기업인지 절감하게 대는데 정권교체를 부르짖으며 마치 모택동시대 문화대혁명을 부르짓으며 역사적 유물들과 지식인들을 처단한 무지렁이 홍위병들처럼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고 있으니 정말로 한심한 일이다. 

(조선일보 좋은 글) 네이버 창업자 "절대 사업하면 안되는 사람은?" 한국 풍경


스스로 '졸부('졸지에 부자'의 준말로 벼락부자라는 의미)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네이버 공동창업자인 김정호(49) 베어베터 대표입니다. 그는 네이버가 잘돼 큰 돈을 벌었지만, 무조건 창업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안정적이고 삶의 질을 중시하는 성격이라면 창업 근처에도 가면 안됩니다. 행복, 가족, 삶의 여유가 더 소중한 사람은 그쪽(창업)으로 가면 인생 우울해집니다." (김정호 대표 페이스북)

꽤 현실적인 조언입니다. 김 대표는 10년간 삼성SDS를 다녔습니다. 사내 벤처였던 네이버에 합류해 공동창업을 했습니다. 초창기 네이버와 한게임의 굵직한 사업을 도맡았고, NHN한게임 대표를 지냈습니다. 

지난 2일 고려대학교 파이빌 준공식에서 강연한 김정호 대표의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해 소개합니다. 파이빌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머물수 있는 공간으로, 김 대표가 1억원을 기부했습니다.

지난 2일 고려대학교 파이빌 준공식에 참석해 기념강연을 하는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 파이빌은 실제 전세계를 돌아다닌 컨테이너 38개를 쌓아 만들었다. 스튜디오, 강당, 아이디어 카페 등이 들어가 있다. 창업 등 구체적인 목적 대신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면서 창의성을 기를 수 있는 공간이다.(사진 왼쪽) / 고려대학교 제공

◇ 삼성다니는 동안 월급 모조리 저축

김정호 대표는 1990년 삼성SDS에 입사했습니다. 인력개발팀에서 해외 박사급 인재를 영입하는 업무를 했습니다. 그는 10년간 80만~200만원 받던 월급을 전부 저금했다고 합니다.

- 모든 월급을 모으는 동안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했나요?
"외국에 '출장가라'고 하면 남들은 싫다고 하는데 저는 좋았어요. 숙박비 받은 걸 아껴서 생활비로 쓸 수 있었거든요. 수당이 나오니까 야근도 좋아하고, 회식도 좋아했어요. '내가 어떻게 삼겹살 먹어보냐' 하면서요."

직장생활 10년간 1억1000만원을 모았습니다.

-부모님의 도움도 전혀 받지 않았나요?
"네, 안 받았습니다. 대학에 다닐 때도 학기중에는 4시간, 방학에는 10시간씩 공사판 노동일을 하면서 학비를 벌었습니다. 지금도 일본식 작업 용어를 쓰다보면 노동일하시는 분들하고 말이 통합니다."

인재개발팀에 근무하면서 당시 삼성SDS 직원이었던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등을 만났고, 1999년 사내벤처였던 네이버가 독립할 때 합류했습니다.

김정호 대표는 대학에서 강연할 때 강연료를 받지 않는다. 미래 사회에 나갈 학생들이 취업이나 창업에 관해 깊이 있게 이해해야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제공

◇사업가의 기질 따로 있어

"삼성 그만두고 네이버 만들 때 제일 힘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월급을 모아 만든 투자금 1억1000만원 외에는) 한푼도 없었거든요."

김 대표는 한국 나이로 서른 셋에 삼성SDS를 퇴사했습니다. 그즈음 둘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당시 애 둘 아빠가 되니 '삶의 의미'보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절박함 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10년간 내가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안하고 살았는데 '이거(네이버) 망하면 안된다'라는 결사적인 저항정신이 생겼습니다."

네이버가 자리잡기까지 그는 한 달에 이틀 정도만 집에 들어갔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아내가 속옷을 가져다 주는 생활을 4년 넘게 했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말이 제 사전에는 없었습니다. 창업 또는 사업을 하려면 '재능'이 있어야 합니다."

-창업에 적합한 재능은 어떤 것인가요?
"예를 들어 사업을 하다보면 약간 (머리가) 이상해질 정도로 한 달 동안 한가지만 생각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걸 버틸 수 있는 (정신적·물리적) 체력이 가장 필요합니다."

-사회에 갓 나온 초년생들이 사업적인 재능이 있는지 알기가 어려울텐데요.
"사업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은 차이가 있습니다. 꼭 남의 돈이라서가 아니라 내 돈이어도 이상하게 '구멍'이 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학생이라면 동아리 등에서 관리업무를 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 동아리 총무를 했는데, 40만원 적자인 상태에서 이어받았어요. 나중에 60만원 흑자로 만들어놓고 나왔습니다."

-학생 신분에서 돈을 불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기질이 따로 있어야 됩니다. 작은 동아리라도 스폰서 관리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근처 가게 주인이나 잘 모르는 선배한테도 '도와주십시오' 하면서 엉겨붙기도 해야하고."

-인터넷에 쓴 창업에 관한 글이 화제였습니다. 20대 초반 학생들을 만나 창업·취업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아쉬운 점이 있었다고요?
"한 번도 사업을 해보지 않은 교수님이나 말만 잘하는 취업 강사, 큰 고민 없이 쓴 신문기사나 책, 월급 받고 직장 생활하는 선배에게 얻은 정보만으로 창업을 하겠다고 동아리방에 둘러앉아서 '말싸움 배틀'만 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래도 창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선 학교에서 끊임없이 수련하고, 직장에서 치열하게 일을 벌여봐야 합니다. 저는 이걸 '남의 돈으로 해본다'라고 표현합니다. 자기 뿐 아니라 함께 일할 사람들도 '이제 (창업할) 실력이 됐다'고 인정할 때, 작은 분야 그리고 새로운 분야, 자신의 수준보다 낮은 분야에서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그가 창업에 대해 쓴 글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크게 성공하는 창업자들은 지나칠 정도로 경쟁심이 강하고 때로는 잘난 척하기 아주 좋아하고 돈독이 제대로 올라있어야 하고 편집적이고 이기적이고 목표 지향적이고 체력과 정력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내 입장이 아니라 상대 입장에서 수요를 파악하는 본능이 강한 사람이어야 합니다.그리고 학생 때 창업을 할 수도 있고,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다가 다른 사람과 합작을 하다가 할 수도 있는데 앞서 말한 스타일이 아닌 진짜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실력이라는 게 공부 잘 하는 것, 아는 것만이 아닙니다. 결국 문제해결능력이 실력입니다. 이게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에 학생들에게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사회적 기업 베어베터 임직원. 베어베터는 곰 같이 우직한 발달장애인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의미다./베어베터 공식홈페이지

◇사회적기업가로 되돌아오다

김정호 대표는 2009년 NHN한게임 대표직을 관두고 여행을 다니고 가족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5년 전 25억원을 투자해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사회적 기업 베어베터를 세우고 공동대표가 됐습니다. 대표지만 월급은 받지 않습니다.

베어베터는 명함·쿠키·커피 등을 만들고 사내 커피숍을 운영합니다. 발달장애인 직원은 203명입니다. 모두 4대보험과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정규직입니다. 이들의 월급은 100여만원으로, 발달장애인이 받는 평균보다 10배 가량 높습니다. 현재 150개 넘는 기업에 납품하고, 2014년부터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뭔가요?
"주변에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분들에게서 발달장애인 취업률이 약 1%정도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발달장애인이 안정적으로 취업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준비 과정은 어땠나요?
"한 8개월 정도 전국 복지관을 돌아다녔습니다. 대부분 발달장애인이 비누 같은 제품을 직접 손으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손으로 만들면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가격도 높아지고요. '왜 굳이 손으로 만들까? 기계를 이용하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명함을 찍을 때 발달장애인이 프린터 버튼을 누른다고 출력이 늦게 되거나 안되지 않거든요. 단가가 높아지지도 않고요."

-작업 방법을 교육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나요?
"예를 들어 커피 볶는 작업은 비장애인 바리스타 1명과 발달장애인 22명이 함께 합니다. 바리스타가 커피 볶는 과정을 책임지고, 커피를 나눠 포장·배송하는 업무는 모두 발달장애인이 합니다. 사실 이런 교육은 하나 하나가 어렵습니다. 굉장히 쉬워보이는 작업을 못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주고, 반복적으로 교육했습니다."

-제품이 잘 나와도 새로운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구매처를 뚫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장애인고용에 관한 제도가 있어 수월했습니다. 국내 기업들은 장애인을 일정 규모 이상 고용해야합니다. 이를 어기면 고용부담금을 내야하죠. 대신 기업이 장애인이 생산한 물건을 사면 장애인을 고용한 것으로 간주해 부담금을 줄여주는 연계고용제도가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베어베터 제품을 구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베어베터를 운영하는 원칙은 무엇인가요?
"첫째는 정부지원이나 예산을 받지 않겠다, 둘째는 이 사업으로 제가 월급이나 배당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돈을 투자하지만 이익을 얻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익 대신 베어베터에서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수익을 창출하는 게 아니라 발달장애인들이 정규직으로 평생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회사로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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