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골드윈과 8.2부동산대책 한국 풍경

정부의 8.2 대책으로 부동산부문에 신규 진입한 사람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다주택자를 투기꾼으로 모는 정부의 잇따른 정책에 부동산시장이 사실상 빙하기에 접어들었다. 주변에 부동산 매수관련 문의전화도 잇달아 받고있다. 사야할 것인가? 팔아야할 것인가?

사실 투자의 세계는 정답이 없다. 다만 여러가지 변수와 과거 본인의 투자경험에 비추어 미래를 조금씩 예측할 뿐이다. 확실한 사실은 현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에 신규진입해 먹을 꺼리(?)는 지난 3~4년이전과 비교해 훨씬 줄어들었으며 리스크는 높아졌다는 점이다. 사실 올초부터 지금까지 다소간의 부동산 경기가 다소 과도하게 급등한 것은 전세계적인 양적완화의 정책후유증, 그리고 이로인한 저금리의 영향이 크다고 보여진다. 비단 한국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 주요국들도 처지는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각설하고 지금의 부동산 상황을 과거 상경에서 읽었던 폴 골드윈의 스토리로 대입해보면 어떨까?

모토로라의 창업자인 폴 골드윈은 어려서부터 변화에 매우 민감했다. 열살이 되었을때 이미 그는 기차역에서 팝콘을 팔면 장사가 잘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시 그가 살던 하버드는 철도의 교차점으로 대부분의 열차들이 석탄이나 물을 얻기위해 정차했다. 그러다보니 많은 아이들이 열차가 정차했을때 팝콘을 팔았다. 지기 싫어했던 골드윈도 역시 팝콘 장사에 뛰어들었으며 때로는 다른 아이들과 영역다툼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갈등이 생겼을때 골드윈은 재빨리 상대방과 화해했고, 골드윈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방법말고 팝콘의 매출을 늘리는 방법이 없을 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손수레를 밀고다니며 팝콘장사를 하기시작했고 손님의 기호에 맞추기 위해 팝콘에 크림과 소금을 첨가해 맛을 더했다. 그의 간단한 노력으로 매출은 급성장했고 자신의 수레를 두 동생인 벨리와 죠셉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객차안에서만 장사를 계속했다.

1910년 어느날 하버드역에 큰 눈이 내려 승객을 가득실은 기차가 출발을 하지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폴 골드윈은 재빨리 샌드위치를 만들어 팔았다. 그리 잘만든 샌드위치는 아니었지만 지친 승객들은 앞다투어 그와 그의 두동생이 파는 샌드위치를 사려고 달려들었다. 골드윈형제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매기지는 않았지만 금방 큰 돈을 벌수 있었다.

여름이 되자 골드윈은 새로운 상품을 고안해냈다. 그는 반달모양의 상자를 만들어 멜빵으로 고정시킨후 한쪽에는 아이스크림을 다른 한쪽에는 삶은 계란을 넣어 팔기 시작했다. 새로운 아이템인 아이스크림과 달걀은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곧 그는 큰 돈을 벌어들였다. 이윽고 골드윈의 성공에 고무되어 하버드 인근의 모든 동네아이들이 덩달아 기차안 장사에 뛰어들었다. 이처럼 혼란해진 기차안 경쟁에 골드윈은 과감히 장사를 포기하고 상품상자를 다른 아이들에게 팔고는 물러났다.

얼마후 객차안에는 누구든 상행위를 금지한다는 공고문이 나붙었다.

폴 골드윈의 어린시절 스토리를 읽다보면 마치 최근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의 급등양상, 즉 갭투자와 역세권 투자 등등 소위 일반인들이 시장에 진입했을때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근 2~3년간 나의 부동산 투자방향은 매도우위였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조심스럽지만 이런 방향으로 입장을 답하고 있다.

지금 현시장이 부동산 버블국면인가 소강국면인가 따지기 이전에 국내외를 둘러싼 변수가 과히 좋지는 않다.

1)한국의 제조업기반이 중국의 급성장으로 인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조선,철강,섬유 등등은 이미 아작이 난 상황이며, 자동차,에너지 부문도 3~4년내 망가질 확률이 크다. 반도체와 바이오쪽이 그나마 선방하고 있긴하나 3년후를 장담하기 힘들다.

2)미우나고우나 MB정부와 박근혜정부는 2008년 서프라임사태이후 냉각된 경기진작을 위해 부동산 확장정책을 기조로 했다. 그러나 문재인정부의 정책기조는 소득분배에 기초한 경제정책이기에 부동산 급등을 바라지않는다. 지나친 부동산 가격하락은 지양하겠지만 가급적 현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부동산 급등으로 상대감 박탈감이 큰 중하류층을 유인하는 정책을 쓸 것이다.
 
3)바젤III가 도입되는 2018년 내년부터는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또는 부실채권 관리가 더욱 엄격해질 것이다. DTI,DSR이 거론되고 있지만, 큰 흐름에서 보면 바젤III를 앞둔 금융당국입장에서는 다소 과도한 한국의 가계부채를 억제하는 정책 위주로 갈 수밖에 없다.

4)인구통계학 측면에서 부동산 시장에 불리한 요인이 많다. 고령화사회에 접어든 지금 현재 가장 많은 인구층인 베이비부머 1세대(1958년생 언저리)와 2세대(1973년생 언저리)들을 받쳐줄 젊은층이 많지가 않다. 자본주의 시장의 경제매커니즘이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라할때 뒤를 받쳐줄 수요층이 탄탄하지않다. 당장 2~3년은 몰라도 10년이후에는 부동산시장의 하락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과연 향후 5년내 어떤 투자법이 유효할까?

 당분간 수년동안 유효한 전략이라고 한다면 경매로 나온 부동산을 싸게 사들인뒤 임대해 현대흐름을 창출하거나 차익을 남기고 재빨리 파는 것이다. 아파트 등 주택부문보다는 상가등 임대형 부동산이 유리할 것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다주택자를 겨냥하고 있기때문이다. 주택을 공공재로 보고 2주택이상에 대한 세금 등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중장기적으로 인구 고령화추이 등을 볼때도 상가, 오피스텔 등 임대형시장의 인기는 당분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0년이후를 예단하기는 어렵기에 어느정도 차익이 났을때는 일정부분 매도하는 전략이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전략적으로 가는 중국, 포퓰리즘으로 가는 한국 세상을 보는 눈

향후 30년간은 미국과 중국의 한판싸움, 과연 뉴그레이트 게임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영국 저널리스트인 팀 마셜이 쓴 참 좋은 책이 나왔다.  우리말 책제목은 '지리의 힘', 원어로는 Prisoners of Geography.

국민소득 2만불시대에 이런 책들을 많이 봐야 한국인들도 한반도안에만 갇혀있는 좁디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세상을 보는 눈을 더 키울텐데......

 

현재의 국제정세를 이해하는데 지리적 요소를 이용해 통시적으로 그리고 거시적으로 분석한 매우 쓸만한 책이다. 여러가지 파트가 있으나 역시 관심을 끄는 부분은 역시 중국과 미국 G-2와 관련된 부분이다.

앞으로 향후 최소 100년간은 미중간 패권의 시대임이 자명할진데 어찌보면 미국의 강대국 부상과정을 최근 중국의 해양강국 행보와 비교하며 그리고 있다.(전반부)

먼저 시진핑시대 들어와 해양강국을 지향하는 중국의 정치노선을 지리적 관점에서 아주 쉽게 설명하고 있다.

지난 4천년간의 중국역사에서 북방유목민족과 남방 중화민족간의 쟁투과정을 쉽게 단한줄로 그린다. 

                "4000년의 대륙통합을 끝내고 해양패권 확보에 시동을 걸고있다."

중국은 고대 상나라부터 모택동, 등소평시대와 후진타오, 현 시진핑정부까지 공산주의 등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대륙 또는 해양 영토확대를 위해 매우 전략적으로 움직였다. 상나라 건국이후 진시황의 중국 통일, 만리장성, 몽골, 여진족 등 북방유목민족간의 피터지는 4000년간의 전쟁의 역사를 대륙통합의 과정으로 그렸고, 미래에너지 자원의 보고이면서 산업발전에 중요한 에너지 수송로인 말라카해협위 남사군도 영유권 주장 등 중국의 해양패권국가 지향은 어찌보면 지리학적 강국들이 가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중국은 1950년 티벳점령, 1951년 한반도 개입, 1959년 히말라야 산맥인근 접경지역에서 인도와의 전쟁을 통해 악사이친지역 확보, 카슈미르 분쟁지역 개입, 1962년 같은 공산국가인 베트남을 침공 등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전략적으로 끊임없이 이웃국가와의 영토전쟁을 벌이고 있다. 모택동, 등소평에 이어 후진타오,시진핑정부에서도 해양강국으로의 부상을 부르짓으며 말라카해협부터 남사군도, 서사군대, 동사군대 일대의 무인도 안보기지 등 해양영토 확보에 주력하고있다.

팀 마셜은 최근 중국의 에너지, 수자원 및 안보전략적 거점확보를 위한 해양 영유권 확대과정이 현 지도부의 한순간의 결정이 아니라 4000년 역사 전체적으로 대륙영토 통합을 끝낸후 마지막 남은 해양영토 확보행보를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마치 미국이 루이지애나, 알래스카 등 영토확보작업을 끝낸후에 카리브해 일대 평정에 나선것처럼.  

1) 티벳과 신장지구의 전략적 가치

먼저 중국 정부가 의식하는 티벳의 전략적 가치는 매우크다. 티벳고원은 중국의 황하강, 양자강, 베트남 메콩강의 수원지로서 만약 가상의 적국 인도가 티벳고원을 확보할 경우(물론 그럴 확률은 드물겠지만) 중국의 목줄을 쥐게되는 중요한 Pivot Place다. 인도로 망명한 달라이라마가 아무리 국제사회에 여론몰이를 하더라도 중국으로서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다.


둘째는 신장지역이다. 신장은 고대 실크로드의 출발지로 중국의 대서역 진출의 상업적 교차로이다. 중국 정부로서는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하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전략적 거점인 이곳을 포기할 수 없는 곳이다. 동투르키스탄 등 과거 분리독립주의자들의 테러 및 소요사태가 끊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주확대 등 다양한 통합작업을 벌이고있다. 2009년 신장지구에 대규모 민족분규가 발생해서 2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중국정부의 대처방식은 다음과 같이 세가지였다. 첫째, 반정부 세력 무자비하게 탄압하기, 둘째 그 지역에 돈 쏟아붇기, 셋째 한족노동자들을 이주시켜 꾸준히 투입하기. 중국의 입장에서 신장지구는 단순히 변방의 한지역이 아니다. 주변 8개국과 연접해있는 국경으로, 중국 심장부의 완충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중앙아를 통한 육상 실크로드의 시발점인 것이다. 

셋째, 이러한 대륙통합 과정을 끝낸 중국이 후진타오이후 시진핑 현 정부까지 마지막으로 해양영토를 확대하려는 노력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최근 말라카해협부터 남중국해 일원은 중국이 연접국가들과 해양영토 확대를 위해 벌이고있는 뜨거운 분쟁의 현장이다.


중국은 세계 전지역에서 에너지 확보전쟁을 벌이고 있다. 일대일로정책을 표방하면서 중동에서 동남아까지 주요한 에너지 수송로의 기점은 전략적으로 항구조차등을 통해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미얀마 앞바다의 가스전을 중국 본토와 연결을 추진하는 등 자원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있는 중국에게 말라카해협부터 남중국해 일원은 주요한 에너지 수송로이자 자원의 보고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다.

파키스탄 과다르항도 전략적 요충지다. 1979년 러시아가 아프간을 침공한 이유는 부동항인 파키스탄 과다르까지 수중에 넣을 의도였다고 한다. 러시아뿐 아니라 중국의 입장에서도 파키스탄 과다르항은 전략적 가치가 크다. 중국이 파미르 고원 너머 아프간과 파키스탄 등으로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대륙교통로와 호르무츠해협을 통과하는 해상무역의 교차점이 과다르항이다. 


이러한 파키스탄의 과다르항을 이미 중국이 접근해 항구를 조차하고 있고 스리랑카 함반토타항부터 방글라데시 치타공,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등 해양에너지 수송로에 위치한 나라들과의 항구조차계약 등을 통해 중요한 해상기지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진주목걸이 전략과 함께 말라카해협부터 남사군도, 동사,서사군도 일대에서는 '무인도 섬만들기' 프로젝트 등을 통해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해양영토 확대전략을 꾸준히 구사하고있다. 아덴만에 구축함 몇대 파견해 해적퇴치를 자랑하고 있는 우리와는 물량면에서 전략면에서 게임이 안된다.

지정학 전문 저술가인 로버트 카플란은 20세기 초반에 카리브해가 미국의 손에 들어갔듯, 남중국해가 중국의 손아귀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한다. 마치 미국이 자국의 육상영토를 공고히 통합하고 나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아우르는 대양강대국이 되었듯이. (쿠바에서도 스페인을 몰아내면서 주변의 해양을 평정)

중국 역시 태평양과 인도양을 아우르는 대양강국이 되고자하기에 중국은 미얀마,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스리랑카의 심해항구에 투자하고 있다. 이들 나라와 우호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해 향후 중국 해군이 이곳을 방문하거나 주둔하게 될 경우는 물론 통상 라인을 중국본토와 연결하는 것까지 염두에 두면서 이곳을 조차하고 있다.

1950년 들어 우리나라의 역대 정부가 과연 중국 정부처럼 전략적으로 움직였는가? 교육정책을 비롯해 경제정책, 산업대책이 5년마다 정권이 바뀌면 혁신이니, 창조니 하는 그럴싸한 단어로만 포장해 뒤집기를 반복하는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 물론 중국과는 덩치가 너무나 차이가 나지만, 에너지 확보를 위한 우리의 전략적 노력이 과연 중국 지도부의 발끝에 미치기나 할까?

2030 에너지전쟁이라는 책을 보면, 전세계 열강들이 에너지 확보를 위해 어떻게 움직여 왔는지 자세히 나와있다. 전세계 오일경제를 뒤에서 조종하는 미국 정부와 11개 메이져 석유회사들, 사우디를 활용해 달러기축통화제도를 공고히 하고 나아가 중동지역 패권확보를 위해 전쟁을 불사한다. '테러와의 전쟁'이니 '불안정의 호'(Arc of instability)니 하는 말들은 사실 미국이 중동패권확보를 위한 명분쌓기에 지나지않을 것이다.

 
21세기들어 모든 현대전은 사실상 에너지 확보를 위한 피튀기는 싸움일 것이다. 현정부 들어 지난 정부가 수조를 들여 쌓아온 원전산업을 최고지도자 1인의 생각에 따라 통째로 날려버리려 하고, 만약에 차기정부들어 정권이 바뀌면 원전폐기정책이 도로아미타불 될 것이며 결국 국가의 재원과 에너지를 좌우의 논리에 따라 소진해버리는 우를 범할 것이다.

현 정부들어 가야사 복원 얘기도 나왔다. 지자체들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앞다투어 고령가야니, 금관가야니 유물복원작업을 하겠다고 예산을 편성하고 심지어 8000억원 이상의 재원마련 얘기도 나온다. 그렇다면 가야사를 복원해야하는 이유가 뭔가? 노대통령의 고향인 김해부근이라서, 영남과 호남에 함께 걸쳐있어 영호남 갈등해소 등 통합차원이라서?

비록 역사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내가 아는 가야는 부족국가의 단계에 머물렀을 뿐 어차피 청동기, 철기시대에 들어와 중앙집권화가 본격화되면서 각 부족간 전쟁을 통해 통합과정이 불가피하며 가야는 이러한 중앙집권국가의 단계에 가기전에 부족국가 수준에 머물렀던 족장연합체 국가일 뿐이지, 우리 민족의 영화로운 과거를 간직한 나라가 아니다. 차라리 그 예산이라면 고구려 연구에 더 올인해서 중국의 동북공정작업에 대한 대응논리를 만드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중국이 서북공정, 동북공정, 단대공정 등 역사공정작업을 벌이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강력한 중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략적 요충지(신정, 티벳,만주, 한반도)에 대한 통합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동북공정을 통해 북한급변사태 발생시 티벳,신장과 마찬가지로 병합하려는 의도가 아니겠는가? 어느 순간부터 고구려가 과연 우리 민족의 일원일까?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중국의 동북공정작업은 매우 치밀하게 잘 전개되고있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삼한(마한변한진한)의 통합과정으로 보고 심지어 고조선도 한사군 등을 통해 과거 중국이 점령한 국가로 해석하고 있다.

중국의 지도자 선정과정을 보면, 비록 등소평이 만들었다고 하나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할 7인의 국무위원이 고르고 또골라서 차기 지도자로 만들어가는 선양의 과정을 거친다. 지방 당서기 등을 맡아보게해 수십년에 걸쳐 A급 지도자가 될 자질과 역량이 있는지 충분히 검증해보고 일단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오면 힘을 실어주는 방식이다. 민주주의라는 허울아래 좌우의 논리를 앞세워 다수의 대중들에게 그럴싸한 인기영합책을 제시해 선출되는 우리나라의 선거방식이 과연 최선일까? 현재 진행되는 각종 정책들은 3년 또는 5년후가 되면 분명 우리나라 경제에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것임이 자명하다.  1)원전을 폐기해도 전기세 인상은 없다.(일본도 35%나 올랐는데 일본보다 기술선진국이 아닌 우리가 무슨수로?)  2) 부자증세만 있을 뿐 서민 증세는 없다. 3) 국가 산업발전과 아무 상관이없는 공무원 증원은 일반 국민들이 연금까지 평생 떠받쳐야할 부담이다. 4)전세계가 법인세 축소와 각종 보호조치를 통해 기업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법인세 증세, 인건비 인상 등 기업에 부담이 될 조치만 쏟아내고 있다.

과연 삼성현대LG같은 재벌기업들이 과연 앞으로도 한국에 천문학적 자본을 투입해 공장을 지을까?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자본에는 국경이 없다." 조현아 사태로 서울에 호텔을 지으려던 대한항공측이 여론을 의식한 정부의 규제로 중단된 것으로 안다. 오히려 미 LA에 최고급 호텔을 짓지 않았던가? 한화도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려고 한다는 뉴스가 있는 것으로 볼때 앞으로 당분간은 우리나라 재벌들이 더이상 한국에 자본을 투입하지는 않을 것 같다. 모두가 잘사는 사회가 가능할까? 그것보다는 중산층이 튼튼한 사회로 가는게 정답이 아닐까? 왜 미국의 역대정부들이 Ownership Society를 주창했는가? 가격경쟁에 밀려 더이상 자동차가 팔리지 않고, 선박이 수주가 안되는데 아무리 노조가 단합을 잘해도 임금인상이 계속 가능할까?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면 얼핏보면 소외된 저소득층 가계도 빛이 들 것 같은데, 과연 자영업사장들이 사람을 계속 뽑을 까? 예전에 미국 연수중에 우리사회가 달리 신기했던 점은 인건비가 비싸, 동네에 살던 변호사 부부도 집안의 소소한 일들은 직접 수리를 하였다. 그래서 미국에는 홈데포 등 각종 인테리어와 집안수리를 셀프로 할수있도록 공구들과 이를 제공하는 대형마트가 잘 발달되어있다. 슈퍼마켓, 세탁소 운영 등을 하던 미국의 교포들도 거의 대부분이 종업원을 고용하지않고 부부 또는 자식들이 운영하는 가족단위 자영업이 많았다. 바야흐로 싫든 좋든우리도 이런 사회가 도래할 것 같다.


















3년후 한국은 없다?



모처럼 들른 교보문고에서 다소 충격적인 내용의 책을 보았다. 시절이 하수상해서 그런가, 요즘들어 다소 부정적인 전망의 미래보고서들을 읽게된다. 공병호씨의 책은 집에도 여러권 있지만 다소 딱딱하게 느껴져 잘 읽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관심분야라 그런가, 이번에는 쉽게 글들이 눈에 들어온다. 미래학자 최윤식씨의 책들과 다소 기조가 비슷하나 분석하는 패턴은 틀리다.

3년후 한국사회는 어떻게 될까? 누구도 어떤 전문가도 사실 3년후 모습을 정확히 진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경제가 여러가지 변수의 총합이라 할때 현재 한국사회가 대내외적으로 처한 상황과 변수들과 인과관계를 잘 따라가다보면 그 근처까지 추론할수 있을 것이다.

먼저 현재 한국사회의 모습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저출산, 가계부채 심화, 고령화, 연 2~3%대의 저성장 국면, 중국의 급격한 경제성장 등등, 이는 굳이 경제학자가 아니라할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공감하는 내용이다.

매일 신문기사를 꼼꼼히 읽다보면
오지산골부터 초등학교가 하나씩 없어지고 있고, 심지어 어떤 학교에서 초등학생 1명을 위해 분교폐지를 반대하는 시골아버지의 분투기를 일부 언론에서 특징적으로 그리고 있기도 하다. 지방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초등학교 학생수가 격감하고있다. 내 어릴적 한반의 학급인원수는 60명을 초과했고 한 학년이 12학년이 넘었다. 심지어 학생이 너무많아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했다. 성산동에서 학교를 다닌 내 와이프 얘기를 들어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우리 애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한 학년의 전체 학생수가 70~80여명 언저리고 한반 학생수가 25명 정도다. 내가 다닐때보다 약 40% 수준이다. 인구는 거짓말을 하지않는다는 사실에 비추어볼때 10~20년후 미래의 모습은 60대이상이 과반수를 차지하게될 고령화사회일 것이다. 아니, 이미 고령화사회가 시작했고 20년후에는 초고령화사회가 시작될 것이다. 즉 우리 경제도 일본처럼 활기를 잃고 비실비실댈 확률이 크다는 얘기다.

중국의 고도성장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우리경제의 앞날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지난해 사드배치발 후폭풍이 아니더라도 이미 중국의 산업성장은 눈부시게 질주하고 있고 우리 제조업체들을 일부에서는 이미 앞지르고 있다. 저자는 각계 전문가의 말을 빌어
그간 한국경제의 근간이었던 반도체, 조선,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디스플레이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중국업계가 따라잡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 격차도 반도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역에서 이미 우리 업체들이 밀리고있다고 판단한다.

이미 몇년전부터 남해안일대는 Rust Belt로 바뀌고 있다. 거제도 조선산업단지, 상해로 주도권을 넘겨준 부산항만, 울산 자동차,조선산업, 광양만에서 군산에 이르는 제철,조선소 들은 이미 인력삭감에 골머리를 앓고있다.

그나마, 선전하고 있는분야는 반도체와 항공산업, 바이오산업 정도랄까?  삼성전자가 반도체호황에 힘입어 평택 고덕단지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짓고있기는 하나 2~3년후 반도체 사이클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중국정부의 천문학적 정부지원과 투자규모를 감안하면 조선철강과 같이 몇년안에 쑥대밭이 될지 어찌 알겠는가?

이미 발빠른 우리 대기업들은 베트남으로 달려가고 있다. 인구통계학적으로 젊은 이들의 비중이 높고 유교문화적 풍토에 저렴한 인건비하며, 거대내수시장인 중국과 연접한 지리적 잇점 등, 베트남의 미래는 밝다.

인구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변수는 북한과의 통일일텐데, 문제는 과연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통일이 이루어질지는 의문시된다는 것이다. 북한급변사태시 단둥과 연변일대의 200만 중국군들이 조중방위협정에 따라 일차적으로 들어갈텐데 과연 우리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있을까? 설령 중국군의 개입이 미국과 일본의 반대로 무산되더라도 무주공산에 빠진 북한영토가 미일중러의 개입하에 어떤 형태로 남아있을지 알수가 없다.

최근 뉴스를 읽다보면 정부의 前정권 차별화 차원의 사정작업이 매섭게 휘몰아치고있다. 前정권의 방산비리를 캐기위해 한국항공우주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갔고, 조만간 최순실,정유라와 엮어 삼성 이재용에 대한 구속여부가 세간의 화두가 될 것이다.

마치 조선시대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낸 서인정권의 일련의 복수극들을 연상케한다. 정권초기에 前정권과의 차별성에 염두에 둔 사정작업은 어느 정권이나 계속되어왔기에 어느정도 이해는 간다. 다만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는 범하지않았으면 한다.
경남일대에서 그나마 선방하고 있는 업체가 항공방산쪽인데 비리잡는다고 업계를 초토화시킬 것인가? 국제사회에서 방산수출분야는 국가가 주도해야할 대규모 국책사업인데, 비리와 부실로 도배한 각종 뉴스들을 경쟁업체들이 절호의 호기로 써먹을 텐데 무슨수로 막을 것인가? 다음수순은 이재용 수사일텐데 또 어떤식으로 여론몰이를 할 것인가?

한국의 경제기적은 사실 정부주도의 수출주도형 정책에 힘입은바 크다. 빈약한 자원, 자급자족하기 힘든 농업경제구조에서 한국이 살길은 수출외에는 먹고살길이 없다. 그러나 중국의 급격한 부상으로 수출기반이 하나씩하나씩 붕괴되고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주력기업들이 무너져가고 가계부채 심화로 내수 활성화도 힘든 마당에 과연 소득재분배 정책이 먹혀들어갈까? 다함께 사는 공정사회, 누구나 인간답게 사는 세상, 말로는 그럴싸해보이지만 글쎄, 최소 3년은 지나봐야 그 결과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3년후 한국은 없다. 굳이 공병호씨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이미 저성장체제에 돌입한 한국경제의 앞날은 특단의 대책이 없는한 일본의 장기불황을 뒤따라가는 수순이 될 확률이 높을 것 같다.     




 
 

매일경제 기사) 황무지 자라섬을 재즈천국으로 만든 남자 인재진 음악감독 한국 풍경

내가 가평을 구원? 가평이 날 구원? 흘러가다 보면 알겠죠, 재즈처럼요
"가평선 막걸리 이름에도 재즈가 붙어…큰 자부심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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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비만 오면 잠기던 가평 자라섬을 연 20만명이 몰려드는 재즈 천국으로 바꾼 인재진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총감독. "예측 가능한 삶은 싫다"는 그의 인생은 즉흥적이고 변화무쌍한 재즈와 닮았다.
경기도 가평읍 금대리에 자리 잡은 신축 단독주택.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재즈가 흘러나왔다. 이 공간에서는 24시간 재즈가 멈추지 않는다.

이 남자가 가평에 둥지를 튼 것은 재즈에 미쳐 찌글찌글한 청춘을 보내고 있던 그를 구원한 것이 가평 자라섬이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그가 가평을 구원했는지도 모르겠다.
가평을 재즈천국으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올해로 14회를 맞는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 인재진 총감독(53) 얘기다. 2004년 처음 이 행사를 만들고 아시아 최고의 음악축제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매년 10월 사흘간 열리는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은 세계 각국 뮤지션 500여 명, 오프 밴드 500명, 자원 봉사자 700여 명 등 20만명이 운집하는 탄탄한 축제로 자리 잡았다.

그가 '잣의 고향' 가평에 '재즈의 도시'라는 근사한 이름을 부여해준 셈이다. 그날 이 집의 안주인은 아쉽게도 부재중이었다. 그의 아내는 세계적인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 씨다.

"사랑은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던 생텍쥐페리의 말을 실천하기라도 하듯 그들은 재즈라는 같은 지향점을 향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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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자라섬에서 재즈페스티벌을 열게 됐나.

▷2003년 공무원을 대상으로 문화 관련 강의를 할 기회가 있어 페스티벌을 주제로 강의를 했다. 얼마 후 가평군 공무원이 전화를 걸어와 가평에서도 재즈페스티벌을 할 수 있을지 물어왔다. 대한민국에 번듯한 재즈페스티벌을 하나 만들고 싶다는 꿈을 매일 꿔온 나로서는 당연히 "예스"라고 답했다. 가평을 방문해 그가 페스티벌 장소라고 찍어둔 곳들을 가보았으나 규모나 접근성에서 적절하지 않았다. 실망해서 돌아서려는데 그 공무원이 난감해하며 말했다. "비가 오면 잠기는 섬이 한 군데 있는데요. 한번 가보시겠어요? " 거기가 자라섬이었다.

―자라섬은 페스티벌에 적절했나.

▷잡초만 무성한 허허벌판 황무지였다. 당시에는 중국섬, 중곡섬 등 여러 개의 이름으로 불리는 방치된 섬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웠다. 저쪽에 푸른 잔디를 깔고 무대와 객석을 배치한다면…. 상상만으로 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태프들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너무 외지다' '거기까지 공연을 보러 오겠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황무지에서 시작한 핀란드 '포리 재즈페스티벌'을 떠올렸다. 1966년 처음 열린 포리 페스티벌은 인구 520만명에 불과한 핀란드에 연평균 15만명의 관람객을 부를 정도로 국민 축제로 자리 잡았다. 자라섬에 포리를 재현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준비는 잘됐나.

▷가족들이 함께하는 야외 축제에 대한 수요가 싹틀 무렵이었기 때문에 행사 홍보 문구는 '자연 가족 휴식 그리고 음악'으로 정했다. 재즈의 대중적 취약점을 커버하기 위해 재즈라고 하지 않고 음악이란 단어를 넣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직접 보도자료를 돌렸을 정도로 필사적으로 일했다. 가평군이 책정해준 3억원이라는 예산은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는 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러나 무대 설치와 아티스트까지 섭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첫 회부터 KTF, 중앙디자인에서 협찬을 받았고 지역축제로는 이례적으로 티켓을 1만원에 판매하기로 했다. 심지어 같이 축제를 준비했던 가평군 공무원들에게 돈까지 빌렸다. 그들은 친구에게 꿔서, 마이너스 통장을 털어서, 아내에게 부탁해서 돈을 모아주었다. 애정 없이 할 수 없는 눈물겨운 결정이었다.

―난관도 많았을 텐데.

▷'불확실한 행사에 돈을 쓰는 것 아니냐'는 비난, '되긴 될까'라는 의심, 철저한 무관심 등 시선들과 싸워야 했다. 두 달 만에 무대와 잔디밭, 주차 공간, 전기, 수도 등을 설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난관은 곳곳에서 터졌다. '잘되겠지'라고 믿으면서도 하루에도 열두 번씩 불안과 초조가 엄습했다. 페스티벌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날, 문득 땀을 흘리며 무대를 설치하는 사람들을 봤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내가 뭐라고 이들이 이렇게 고생하나.' 꼭 성공해야겠다는 의지가 단단해졌다. 관객이 얼마나 올 것인지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행사 당일 김한교 가평군 과장이 말했다. "관객이 안 오면 인 감독과 나는 북한강으로 들어가야 해"라고.

―행사는 성공적이었나.

▷저녁 6시가 공연 시작 시간이었는데 오후 5시 30분이 조금 넘자 관객이 피란민 행렬처럼 꾸역꾸역 자라섬 안으로 밀려들었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2만명이 모여든 첫날은 대성공이었다. 초가을 푸른 초원 위에서 삼삼오오 음악을 즐기는 풍경은 내가 꿈꾸던 축제의 모습과 일치했다. 그러나 그 꿈은 둘째날부터 쏟아진 폭우로 산산조각이 났다. 폭우로 북한강 수위가 올라가면서 자라섬은 물바다로 변했다. 진흙탕에 차가 빠지고 음향 장비가 물에 빠져 감전사고가 일어나 나는 모든 공연을 취소했다. 관객들은 동요했고 배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돈이 모자라 무대 위에 지붕을 덮지 못한 것이 큰 실수였다. 다음날도 비가 왔지만 임시방편으로 친 천막 아래서 공연이 시작됐다. 비가 몰아쳤지만 아티스트들의 열정적인 무대에 관객들은 환호하기 시작했고 비와 하나가 되었다. 빗속에서 열광했던 사람들은 그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절반의 성공이었다. 가평군도 아쉬워했고 다음에는 더 잘해보기로 하면서 행사가 매년 이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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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섬 페스티벌을 기획하기 전에는 뭘 했나.

▷공연 기획, 음반 제작을 했다. 콘텐츠는 훌륭한데 돈이 안 되는 공연을 올린다고 해서 '공연업계의 마이너스 손', 필요하지만 잘 팔리지 않는 음반만 만들어 '희귀 음반 전문 제작자'라고 불렸다. 대학로에서 재즈 전용 소극장인 딸기극장을 운영했다. 틈틈이 외국 페스티벌도 많이 보러 다녔다.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PD나 기자를 준비하다가 실패하고 우여곡절 끝에 중견 의류회사 해외영업팀에 입사했다. 6개월10일 만에 그만뒀다. 친구들과 생활정보지 사업도 했지만 두 달 만에 망했다. 무엇보다 아직 오지도 않은 내 미래가 보인다는 게 견딜 수 없었다. 즉흥적인, 재즈 같은 삶이 좋았다. 지금도 나는 1년 후 모습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신난다.

―재즈와의 인연은.

▷대학 입학 후 취주악부라는 서클에 들어가면서 학교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거기서 보냈다. 수업은 거의 참석하지 않아서 학과 친구들 중 모르는 애도 많다. 학점은 선동열 방어율 수준이었다. 서클에서 처음으로 색소폰을 불었다. 생각만큼 악기는 잘 다루지 못했는데 유일하게 잘하는 게 있었다. 연주자 섭외였다. 고연전을 할 때 밴드부 인원으로 음악을 감당할 수 없어서 외부 뮤지션이 필요했다. 밤무대 악사 형님들을 섭외해야 했는데 그게 너무 신나고 재미있었다. 음악 비즈니스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공연 기획을 하다가 신용불량자가 됐다던데.

▷계속된 적자에다 중국 인형극 공연이 참패하면서 7년간 신용불량자로 살아야 했다. 돈에 대한 감각이 없어서 수입과 부채가 얼마인지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공연을 멈추면 죽는다는 생각에 계속 공연을 올렸다. 전기가 끊긴 집에서 촛불을 켜놓고 살았다. 자라섬 페스티벌 3회 때까지 누적된 부채로 스태프들에게 1년 넘게 급여를 지급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러서 결국 내가 살던 어머니 명의의 집마저 팔아야 했다. 신용불량자 시절 벽지 위에 '부채는 성자의 영혼도 좀 먹는다'라고 썼던 게 기억난다. 이 문구는 지금도 금과옥조로 삼고 있다. 급여를 주지 못했는데도 18개월 동안 한 명도 나가지 않은 직원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돈이 없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1999년 딸기극장을 운영할 때 모 방송국에서 3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찍자는 섭외가 들어왔다. 늘 어머니를 실망시키던 게 마음에 걸려서 TV에 나온다고 고향집에 알렸다. 어머니가 동네 친구들에게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그런데 식당 아주머니가 "외상값 언제 갚는 거야"라고 내게 물어보는 장면이 방송에 잡히는 바람에 어머니가 동네에서 창피를 당하셨다. 다음날 서울로 올라와 외상값을 죄다 갚으셨다. 또 한번은 어머니 생신에 여동생이 "선물은 됐고 케이크만 하나 사오라"고 전화를 했다. 그런데 단돈 1만원도 없었다. 모든 통장의 잔액을 긁어 모았더니 겨우 1만원이 됐다. 가장 작은 케이크를 사고 이렇게 축하카드를 썼다. "어머니 이 케이크는 작지만 제 마음은 누구보다 크게 어머니 생신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정말 눈물이 많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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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인재진 씨와 그의 아내인 세계적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 씨는 재즈라는 같은 지향점을 향해가고 있는 든든한 동지다. 인씨는 아내의 작업실 피아노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한주형 기자]
―무한 긍정주의라는데.

▷공연이 망해도 깊이 절망하지 않았다. 언제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실패를 거듭해서인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두려움이 별로 없다. 우리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아무도 모른다. 좌절하지 않고 갈구하는 것을 가치 있는 방향으로 끌고 가면 된다. "운명이 너에게 레몬을 주거든 그것을 레모네이드로 만들라"던 서양 속담도 있지 않은가.

―아내인 나윤선 씨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

▷2003년 핀란드 포리 재즈페스티벌에서 처음 만났다. 나는 퓨전재즈 밴드를 데리고 갔는데 당시에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나중에 들으니 나윤선이 그 사실을 매우 놀라워했다고 하더라. 그후 나윤선이 매니지먼트 회사를 찾고 있다는 연락을 지인에게 받았다. 이미 유럽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한국과 연계해 국제적인 활동을 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내가 적임자였다. 그녀를 만났을 때 무척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도 일이지만 이 여자와 사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나의 목표는 국제 페스티벌을 만들어서 오래 유지하는 것과 뛰어난 아티스트를 찾아 지구를 몇 바퀴쯤 도는 것이었다. 2007년부터 해외투어를 만들어 일도 하고 연애도 하게 됐다.

―재즈계에서는 두 사람의 결혼을 윈윈이라 한다는데.

▷서로의 일에 대해 100% 이해하고 있으며 지향점이 같다. 그녀는 뛰어난 재능과 성실함을 동시에 갖췄다. 실력 있는 아티스트 중에는 까탈스러운 이들도 적지 않은데 아내는 공연이 끝나고 대기실 청소를 직접해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점을 존경한다. 2008년 독일 레이블(ACT)과 음반 계약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유럽에서 활동 폭을 넓히게 됐으니 내가 레이블을 적극적으로 개척한 것이 아내의 성장에 도움이 된 셈이다. 아내도 결혼 후 심적으로 안정감을 갖게 됐다.

―정말 아내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결혼하려고 할 때만 해도 빚이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였다. 그런데 아내가 선뜻 결혼해주었고 내가 더 많은 일을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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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와 기획자의 관계는.

▷아티스트는 재능을 천부적으로 타고난 사람이다. 기획자는 시행착오를 통해 만들어지는 사람이다. 아티스트가 자신의 음악으로 말하듯 기획자는 무대에 올리는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 예술혼을 불태우는 아티스트의 삶은 존경받아 마땅하고, 기획자는 그들과 늘 가깝고 친하게 지내야 한다. 그래야 아티스트의 창조성에서 아이디어를 끌어낼 수 있다. 아티스트와 정치인은 공통점이 있다. 박수 받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티스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정치인은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한다. 그런 면에서 정치인이 박수를 받기 훨씬 쉬운 것 같다.

―재즈가 나에게 해준 것들은.

▷재즈는 참 고마운 존재다. 음악과 관련한 일을 하려고 보니 재즈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원래 남들이 안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해보니까 금방 알겠더라. 왜 안 하는지(웃음). 하지만 재즈하는 사람이 드물어 해외 행사에 갈 기회가 많았다. 2000년 프랑스대사관 초청으로 프랑스 '프랭탕 드 부르주'에 참가한 이후 해외 페스티벌에 자주 가면서 국제적인 인적 네트워크가 넓어졌다. 특히 좋은 사람들이 옆에 많이 남았다. 페낭 아일랜드 재즈 페스티벌 디렉터인 폴 어거스틴, 홍콩 재즈협회 회장을 지낸 피터 리와는 나이가 다르지만 재즈를 매개로 친구가 되었다. 국제행사 때 우리는 '피터, 폴 앤드 메리(Peter, Paul and Marry)'라는 미국 컨트리뮤직 그룹의 이름을 살짝 바꿔 '피터, 폴 앤드 JJ(재진)'라고 소개하며 아시아의 삼총사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롤 모델은.

▷핀란드 포리 재즈페스티벌을 만든 전설적인 디렉터 유리키 캉가스다. 2001년 호주에서 열린 국제 재즈포럼에 갔다가 그를 처음 만났다. 그가 이듬해 포리 페스티벌에 초청했는데 거기서 재즈계의 별들을 다 만났다. 당시 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이 무대에 올라 소울가수를 소개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그때 결심했다. "이 사람처럼 살아야지"라고. 그 후 그는 나의 멘토가 됐다. 자라섬 페스티벌 1회에 그를 초대했는데 진흙탕으로 변한 현장을 보여주게 된 것은 유감이었다. 70대인 그는 지금 은퇴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좌우명은.

▷꾹 참자, 안 되면 말고. 상반된 의미 같지만 아니다. 뭐든지 인내하면서 오래하다 보면 잘할 수 있고, 꼭 그게 아니라도 변주할 수 있는 다른 길이 보이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그럼 그 길로 가면 된다.

―재즈 말고 관심 있는 영역은.

▷요리와 낚시다. 7~8년 전부터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좋은 사람들을 초대해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면 요리 실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친구들이 먹어보고 좋은 평가를 해줘 음식 만드는 게 더 재미있다. 언젠가 꼭 조리사 자격증을 딸 것이다. (그는 취재진에게도 직접 만든 요리로 저녁을 대접했다. 마당에서 키운 야채를 다듬어 샐러드와 수프를 만들고 스테이크도 구웠다. 솜씨가 수준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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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음악감독 인재진씨와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 부부.
―14년째를 맞는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은 어떻게 발전했나.

▷5회 때부터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5회 때 처음으로 급여 100만원을 받았다. 지금은 재정구조가 안정적이다. 정부·지자체 지원, 스폰서, 티켓 판매가 각각 예산의 3분의 1씩을 차지한다. 가평군 사람들이 재즈페스티벌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가평에는 재즈라는 단어가 붙은 간판이 유난히 많다. 재즈헤어, 재즈버거, 재즈컴퓨터 등등. 심지어 70대 할머니도 재즈를 안다. 가평 잣을 이용한 재즈 막걸리가 상품화됐고 10주년 행사 때는 가평에서 나는 포도로 만든 '재즈와인' '자라섬 뱅쇼'를 출시했다. 페스티벌과 자라섬이 공생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예산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년 특정 국가에 초점을 맞춰 아티스트들을 초청하고 있다. 자라섬 무대에 선다고 하면 재즈 아티스트들의 해당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기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 위상이 높아졌다. 올해는 이스라엘의 해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는데.

▷올림픽의 흥을 돋우는 문화올림픽 총괄기획을 맡았다. 사전 붐업부터 올림픽 기간 문화축제, 사후 행사까지 개·폐막식을 빼고 올림픽을 전후해서 전국에서 펼쳐지는 문화행사를 모두 지휘하는 역할이다. 슬로건은 '2018 평창, 문화를 더하다'다. 서울·평창뿐 아니라 전국, 전 세계 주요 도시, 온라인에서 문화행사를 선보이며 올림픽 열기를 확산시킬 계획이다. 평창올림픽 G―200, G―100을 기점으로 강릉 재즈프레소 페스티벌, 올림픽 불꽃축제, 프라이드 오브 코리아 등을 계획하고 있다. 국악, 팝, 재즈, 록 등으로 전국 여기저기에 신명나는 축제 판을 깔아볼 것이다.

―10년 후 내 모습을 떠올려 본다면.

▷60세 이후에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 7~8월에는 유럽의 재즈페스티벌이 열리는 도시를 찾아다니고 놀며 요리를 하고 싶다. 월·화·수요일은 놀고, 목요일은 음식 준비하고 금·토·일요일은 푸드트럭을 열어 재즈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파는 상상을 해본다. 진짜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

인재진 감독은…

1965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1985년 고려대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얼마 안 돼 전공을 잘못 선택했다고 후회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 서클인 밴드부에서 보냈다. 졸업 후 취업했지만 예측 가능한 미래가 싫어서 그만뒀다. 1999년부터 대학로에서 재즈 전용 공연장 '딸기 극장'을 운영했다. 누적된 적자로 신용불량자로 7년간 살았지만 음악에 대한 자신감은 늘 충만했다.

2004년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을 만들고 14년간 아시아 최고의 페스티벌로 키웠다. 2010년부터 광주월드뮤직페스티벌 총감독도 맡고 있으며 호원대학교 공연미디어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등 음악 관련 상도 다수 받았다. 평창동계올림픽의 흥을 돋우는 문화올림픽 총괄기획감독을 맡아 총지휘할 예정이다.

2018년, 경제위기 재연될까? 세상을 보는 눈

1997년 12월~1998년 IMF, 2007년~2008년 subprime사태, 2018년은?

10년 위기설이 도래하는 2018년은 여러가지 면에서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 이번에도 반복적으로 경제위기가 도래할까?
모처럼 교보문고에 들러서 이와 관련해 판단의 지침이 될만한 책 세권을 정독했다. 

- 바젤3 모멘트, 제4의 물결이 온다, 대한민국 부동산의 미래 -


바젤3 모멘트의 요지는 2018년부터 적용될 바젤3 체제하에서 은행들이 BIS 비율을 기존 14%에서 14.52%로 올리면서 부동산공급과잉 및 가계악성대출, 한계기업 확대 등으로 실업자,자살자 급증 및 기업 연쇄도산 등 총체적인 경제불황이 야기될 것으로 전망하는 다소 부정적인 내용이다. 은행권에서는 새로운 IFRS 9 회계기준을 도입해야하기에 더욱 정량적으로 대출기준을 엄격히 심사하는 등 재정건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것이기에 사회전반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주리라는 전망이다.

모멘트는 민스키모멘트를 말한다. 민스키 모멘트는 미국의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가 주장한 이론으로 과도한 부채 확대에 기댄 경기호황이 끝난 뒤 채무자의 부채상환 능력이 나빠져 결국 건전한 자산까지 내다팔아야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민스키모멘트는 주류 경제학계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조명을 받은 이론으로 이책에서는 2018년 1.1부터 시행되는 바젤3 체제하에서 한계상황에 몰리는 기업과 개인들이 우량한 자산까지 대거 팔면서 연쇄도산하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최근 문재인정부 들어 LTV,DTI 강화에 이은 DSR(개인총부채상환비율)에 기반한 엄격한 대출시스템을 시행하고 있는 것은 최근의 부동산급등을 막아보려는 이전 참여정부식의 부동산 억제책일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내년 바젤3 체제를 앞두고 미리 대비책으로 시행해보려는 정책의지도 곁들어 있어보인다.

저자는 2018년부터 2022년간 약 5년정도 경제충격을 예고하고있다.






'제4의 물결이온다'는 미래학자 최윤식씨가 쓴책으로 이전 2030 미래위기에 이은 또다른 미래학보고서이다. 저자는 2018년 또는 2019년부터 90%이상의 확률로 상당한 경제적 위기가 올 가능성을 예고하고있다. 역시 촉망받는 미래학자답게 전세계적 차원의 정세분석과 경제분석을 곁들여 보다 큰 틀에서 분석을 한후 한국의 경제상황에 대비해 여러가지 변수를 들어 경제충격이 올 확률이 클 것임을 예고하고있다. G2 경제전쟁에서 미국의 소리장도 전략에 따른 대중 경제전 및 중국의 경제충격 가능성 고조, 이에 따른 한국시장의 대내외적 충격 가능성을 진단하고 있다. 중국의 자산시장은 2017년부터 1차적인 충격을 받을 확률이 크며 2019~2020년 90%이상의 확률로 금융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한다. 또한 중국은 외환보유액의 감소 부동산버블의 심화로 인해 몇년 동안 부채가 폭발적으로 상승하여 기준금리 인상시, 가계와 상업영역의 버블붕괴가 일어날 것이라 한다.




그나마 위의 두책보다는 다소 덜 암울한 전망을 내린 책이 대한민국 부동산의 미래다. 저자도 2018년을 위기의 기점으로 잡고있다. 2018년은 대한민국 최고 인구층인 1971년생이 48세가 되는 해이다. 부동산 투자전문가의 입장에서 논지를 편 저자도 2018년부터 인구변동측면에서 2018년부터 우리나라에서 서서히 자산 디플레이션이 올 가능성이 크며, 특히 5년~10년 정도 일본형 장기불황이 올 가능성이 큼을 설파하고 있다. 일본을 증오하면서도 일본의 식민지 산업구조에서 해방된 대한민국의 현재 또는 미래진행형은 일본의 전철과 너무도 유사하다. 소니,파나소닉 등 기라성같은 일본의 전자기업들이 한국의 삼성, LG 등 전자업체들에 따라잡힌이후 제조업 공동화현상이 벌어졌고 인구변동 및 산업계 지각변동으로 장기불황이 왔듯이 한국도 조선,반도체 등에 천문학적 투자를 하고있는 중국의 제조업체들에게 하나씩 잠식당하고 있고 제조업체 공동화현상 등 경기불황이 올 가능성이 큼을 역설하고 있다.

그나마 부동산 차원에서는 다음 두가지로 불황의 파고를 넘어갈 것을 주장한다.

첫째 '서울과 수도권 1기신도시' 부동산에만 집중할 것
둘째, 상가 등 수익형부동산에 집중할 것

일본에서 1980년대 도쿄에서 35~50Km 떨어진 다마신도시와 지바신도시 등 신도시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젊은층이 떠나고 노인만 사는 실버타운으로 변모하면서 90%이상의 집값 폭락이 왔듯이 한국도 서울과 신도시 1기 지역을 제외한 파주,김포,인천,동탄 등 2기 신도시의 부동산가격 폭락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다만 서울은 중국 1%자본가들의 경제수도 집중투자 및 소위 '전국구 투자가'들에 의해 한강인근과 강남 등 핵심지역의 소형아파트와 오피스텔에 집중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셰어하우스 등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른 미래형 임대주택사업을 주시할 것을 강조한다.

최선의 시나리오중 하나는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에 따른 10만명 이상 탈북자들의 서울 등 수도권 집중이전 등이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측면에서 일본형 장기불황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예단하고있다. 

여하튼 세명의 저자들 모두 2018년이후 부동산 또는 경제불황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다. 최윤식씨의 책시리즈는 작년부터 꾸준히 읽어오고 있고 이를 토대로 작년부터 대출부담이 큰 부동산을 매년 2개씩 정리하고 있다.

김장섭씨의 부동산전망은 10년전부터 분석해왔떤 내 생각과 상당히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쉽게 속독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최순실사태와 박근혜정부의 몰락 및 이의 반대급부로 정권을 잡은 문재인정부가 참여정부식의 무자비한 재벌때리기 정책은 지양했으면 좋겠다. 이재용회장의 재판을 앞두고있으나 감정(포퓰리즘)에 치우친 강압책은 현재 또는 향후 5년간의 경제불황 가능성을 놓고볼때 상당한 충격을 야기할 것임은 틀림이 없다.

'대한민국 부동산의 미래'의 저자 김장섭은 현재 기업가들이 처해있는 현실에서 일본의 사례들과 비교하여 제조업 공동화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중국의 일용근로자 인건비가 한달에 30만원 정도라 할때 베트남은 10만원, 북한은 13만원인 반면 현대자동차의 고졸노동자 한달월급은 400만원이다. 거기다 매년 인건비도 올려주어야하고 파업도 자주 발생한다. 1인당 차를 만드는 노동생산성, 연봉을 기준으로 한 명목노동생산성 모두 최악이다. 2000년대 초반이후 현대차는 더이상 한국내 공장을 신설하지않는다. 인도 첸나이 공장, 미 버지니아주 기아차 공장 등 해외공장은 꾸준히 늘리고있다. GM또한 인천부평공장에 대한 신규투자 및 공장확대는 포기한지 오래다. 북한과 중국 등 사회주의권과 연접해서 그런지 강성노조와 일본 수준의 고액의 근로자연봉, 재벌때리기가 만연한 사회풍토 등을 고려해볼때 국내 투자를 꺼리는 것은 당연한 기업가들의 경제논리일 것이다.

지난주 읽었던 경제매거진에서 영안모자의 스토리를 읽은 적이 있다. 전세계 모자업계의 큰손인 영안모자는 모자외에도 가발, 지게차 등 전혀다른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영안모자 회장왈, 한국공장의 인건비가 최근에 미국에서 인수한 클라크지게차 공장보다도 20~30%정도 인건비가 비싸고 연휴가 많아 근무일수도 훨씬 적은 등 노동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방글라데시, 베트남 등 동남아 일대 인건비는 물론 턱도없이 싸고 노동생산성도 뛰어나다고 한다. 글로벌을 상대로한 기업가의 입장에서 볼때 법인세 인상 등 호전적인 한국내 기업투자여건은 전혀 투자할 기분이 안들 것 같다. 

중국이 전세계적 제조업공장기지로 부각되면서 상대적으로 미 디트로이트 등 러스트벨트내 제조업체의 붕괴, 이로인해 금융규제 완화 등 금융정책과 실리콘밸리 등 IT산업으로 미 경제를 살려보려했으나 결국 2008년 서프라임사태가 왔다. 러스트 벨트 등 미 백인 중하류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업고 대통령이 된 트럼프의 제조업 리쇼어링 정책의 성공가능성의 여부를 떠나서 우리도 정권 재창출을 위한 서민층 살리기 정책올인보다는 제조업체 기살리기 정책을 우선적으로 펴야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본 전자 및 제조업체들의 선전으로 몰락한 미국, 한국의 전자 및 제조업체들의 도약으로 불황에 빠진 일본, 중국의 전자 및 제조업체들의 선전으로 서서히 불황의 그늘로 빠져들고 있는 한국이 앞으로 5년 또는 10년이상 우리가 처해져있는 현실인가?
전세계 산업과 경제가 실시간으로 연동되고 있는 이시점에 글로벌 경제전쟁이라는 커다란 포커판에서 메이져들의 전략과 의도를 제대로 읽지못한채 한국의 국내0 상황만 고려한다면 우리도 예전의 필리핀이나 아르헨티나 또는 베네수엘라처럼 쇠락할지도 모른다.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이 기껏해야 공무원 17만명 늘리기 정책이라는데 실소를 금치못한다. 장기적인 시각이라기보다 땜질처방식 포퓰리즘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예전 일 고이즈미 정부처럼 우리도 향후 엄청난 공무원연금 적자 등으로 국가 재정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청년실업 해결책이라는게 고속도로상에 패스트푸드 행상이나 배달업 등이라는 건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발로라고 밖에는 안보인다. 근시안적인 청년수당을 조금더 주고 알바수당 올려받자 현실에 안주하기밖에 더하겠는가? 제2의 네이버,카카오,넷마블기업가들이 나오도록 청년육성프로그램을 만드는게 우선이 아닐까? 핀란드나 이스라엘처럼 왜 우리는 벤쳐기업 육성이나 벤쳐투자자금 지원확대 등으로 가지 않는가? 미 서부의 실리콘밸리나 동부의 실리콘앨리같은 산업벨트를 만들어 젊은이들의 열정과 창의력을 이끌어낼 생각을 하지않는가?  

각설하고, 지금은 몸을 사려하는 시점이다. 콘트라티에프 파동, 주글라파동, 허니컴 모델 등 여러가지 경제이론에 비추어볼때 MB정부와 박근혜정부 10년동안 부동산 완화 또는 확장책이 시행되어 왔다면 앞으로 5년 또는 10여년은 부동산 억제책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2018년이후가 주목된다. 경제위기의 순간에 또다시 투자의 기회가 도래할 까? 지켜볼 일이다.

*콘트라티에프 파동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활동은 상승과 하강과정의 무한반복 즉 경기순환을 겪는다. 이 과정에는 확장기와 수축기의 2단계로 구분되며 이는 다시 회복기, 활황기, 후퇴기, 침체기의 4단계 과정으로 구분된다.










    







부자 연구시리즈)정문술-나는 미래를 창조한다. 한국 풍경

6.25전쟁이후 신흥경제국 '한국'이란 나라에서 부자된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부자가 되기 위해 아니 부자를 꿈꾸기 위해서는 먼저 부자의 마음부터 읽어보아야할 것 같아 동서양의 부자들 스토리를 한권씩 한권씩 읽고 있다. 교보문고의 경제서적 코너에 보면 대체로 1세대 부자들(이병철, 정주영, 김우중, MB)부터 2-3세대 부자들(이건희, 이재용 등)까지 여러 종류의 책이 분류되어있다. 이병철, 정주영 스토리는 도서관에 갈때마다 읽어보지만 다시 읽을때마다 새롭다. '천석꾼은 천가지 고민, 만석꾼은 만가지 고민'이라는 사마천의 고금의 명언도 있지만 큰 재벌들의 스토리를 읽다보면 과연 그 생각의 스케일이 다름에 감탄한다.

먼저 정주영 회장의 스토리를 읽다보면 '성실, 정직(신용), 통찰력, 결단'이란 단어들이 마구마구 떠오른다.
한국동란직후 최대의 난공사였던 '고령교' 공사에서 천문학적 손실을 보았음에도 정부와의 공기 약속 등 신뢰를 잃지않기 위해 모든 재산을 쏟아붇는 그 무모함, 소양강 댐공사의 여파로 만성 침수지역이었던 압구정동 일대의 땅이 더이상 홍수피해를 심하게 받지않을 것으로 보고 그 일대의 습지를 매우 헐값으로 사들인후 수십동의 현대아파트를 지어 압구정 현대아파트 신화를 창조하는  통찰력, 오일쇼크로 국내 경기가 타격을 받자 오히려 오일전쟁의 핵심국 사우디 등 중동으로 진출하여 해외 개척신화를 쓴 스토리, 아산만 간척사업이 조류간만의 차로 난항을 겪자 폐유조선을 끌고와 막는 기발한 발상과 결단력 등등 이미 언론에 너무나 많이 노출된 스토리이기에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겠다.    
 
현재 한국에서 부자된 이들은 다음  몇가지 부류로 나누어볼수 있다.

1. 이병철, 정주영,김우중 등 자수성가형 부자
2. 이재용, 정용진 등 걸출한 재벌 1세의 부를 물려받고 착실한 경영수업을 받은 금수저형 부자
3. 벤쳐신화를 쓰며 재벌의 반열에 오른 게임회사 오너, 네이버, 다음 등 IT 부자들  

이중 정문술회장은 43세의 적지않은 나이에 공무원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매우 보기드문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책을 읽다보니 역시 미래를 보는 혜안이나 도덕성 등 부자는 그냥 되는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든다. 정문술회장이 성공한 이유는 수없이 많겠지만 그의 인생역정을 살펴보니 대체로 세가지 면이 눈길을 끈다.

첫번째는 정도경영이다. 사람을 뽑을때는 학벌보다는 철저하게 그 사람이 가진 자질과 인성 그리고 능력만을 보았다. 중국사회에 만연한 '꽌시' 못지않게 한국도 연의 사회인지라 친척이나 동문친구들의 취업청탁 등이 수없이 많았을텐데 철저히 배격하고 오직 능력위주로 사람을 뽑았다는 점이다. 또한 정치권력의 외압에도 굴하지않았고 오직 벤쳐사업가의 대부로써 사업만 생각할 뿐
정치지망 등 권력욕도 탐하지 않았다. 

둘째는 '남을 이롭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이롭게한다'는 自利利他의 정신이다. 미일 등 선진국들의 독점기술이었던 반도체 전공정 장비인 SMD마운터의 개발을 위해 사원들에게 전권을 주고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않았다는 점이다. 사원이 신바람이 나서 일하면 성과는 저절로 온다는 생각으로 연구원들이 어떤 부품을 사든 회식자리에 법인카드를 펑펑쓰든, 해외출장시 부부동반으로 다녀오든 말든 아낌없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은 기업을 경영하는 자리에서 보통의 인내심이 아니면 견디기 힘든일이다. 오히려 회사돈을 자기돈처럼 펑펑쓰는 연구원들의 낭비벽을 지적하는 충직한 재무이사마저 해고시키는 결단을 내릴 정도로 직원들의 기 살리기에 최선을 다했고, 결국 중소기업이지만 대기업도 개발하기 힘든 SMD마운터를 개발해내고야만다.   
 
셋째는 선양의 미덕이다.
재벌들의 2세 세습이 당연시되는 한국식 자본주의 풍토에서 정문술회장은 자식들에게는 일체 회사의 경영에 간섭하지 않도록했고 각자의 길을 걷게했을 뿐 막대한 부도 되물림하지않았다. 가장 능력있는 경영후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회사가 가장 잘나갈때 과감히 회장자리를 물려주는 그 정신이 실로 놀랍다. 물론 정회장의 은퇴이후 미래산업 주가가 많이 빠져서 속상해할 이도 많겠지만 다른 벼락 졸부들이 필히 따라야할 숭고한 정신이다.

요임금이 자기의 자식이 아둔해 후계자로 적합하지않다고 보고 치수사업 성공으로 온 백성의 지지를 받은 우임금에게 자리를 물려주면서 수천년동안 중국에서는 아름다운 미덕인 선양의 정치철학이 계승되고 있다. 지금 시진핑을 선출해내는 중국의 지도자 옹립과정을 잘 살펴보면, 어찌보면 춘추전국시대 특히 전국시대 칠웅의 제후로부터 천거받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7인의 국무위원으로부터 오랫동안의 국가경영능력을 철저하게 검증받은뒤 천거받는 그리고 모택동, 등소평, 강택민, 호금도에 이어 선양의 방식으로 권력을 세습받는 중국의 정치제도와 선양의 통치철학을 보면 참으로 아름답다는 느낌까지 든다. 반면에 한국은 어떠한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넘어오는 세습독재권력의 북한과 재벌2세, 3세들의 향연장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의 경제계 풍토와는 매우 대비되는 이 시점에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능력있는 후계자에게 모든 걸 넘겨주고 떠나는 정문술회장의 선양의 미덕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나는 미래를 창조한다'는 책 제목에는 단순히 미래산업과 한국 벤쳐사업의 미래를 창조하느 것 외에도 아름다운 기업가 정신이 중의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조선비즈) 손자병법 기정전략 세상을 보는 눈

손자병법을 한 글자로 요약하면 '全'… 안싸우고 몸을 온전히 유지한 채 승리하는 것이 최상책

송병락 원장은 개인·기업·국가를 승자로 만들기 위한 전략을 찾기
송병락 원장은 개인·기업·국가를 승자로 만들기 위한 전략을 찾기 위해 지난 50여 년 동안 손자병법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송 원장이 손자병법의 희귀 판본이 담긴 상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 이태경 기자

"전략을 모르고 승자가 되는 것은 방향을 잃고 표류하던 배가 우연히 항구에 안착하는 것만큼이나 드문 일이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이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전략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송병락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자유와창의교육원 원장은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의 말을 빌려 "현대는 상시(常時) 전쟁, 하이브리드 전쟁의 시대"라고 했다. 군사 전쟁이 없어도 경제 전쟁, 소프트파워 전쟁, 사이버 전쟁이 항상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군(軍)과 민(民), 전·후방 경계, 전선(戰線)이 따로 없는 시대라며 전략을 모르고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했다.

송 원장은 경제학자로서 이례적일 만큼 오래 '전략(戰略)'에 천착해왔다. 1960년대 초부터 '손자병법'을 100번 넘게 읽으며 평생의 지침서로 삼았다. 그는 "손자병법은 외국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전략서"라며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은 사람이 손자병법을 읽고 연구해 전략적 사고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서울 여의도 FKI빌딩에 있는 자유와창의교육원 원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인천상륙작전
손자병법의 요체는 '全'

―손자병법은 현대사회에도 유용한가.

"손자병법은 손자가 장군을 하면서 체험한 실전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이후 삼국지 조조, 마오쩌둥의 참모인 궈화러(郭化若), 베트남의 보응우옌잡 장군 등이 계속 실전을 통해 검증·보강·재해석하면서 내용이 더 알차고 풍부해졌다. 손자병법과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각각 동양과 서양을 대표하는 병서이지만 깊이와 범위에서 손자병법이 훨씬 앞선다. 헨리 키신저는 미국이 중국의 국공내전부터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까지 아시아와의 전쟁에서 좌절감을 맛본 것은 손자병법을 잘 몰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손자병법의 요체는 뭔가.

"한 글자로 압축한다면 '온전할 전(全)'이다. 몸을 온전히 유지한 상태에서 적을 이기는 전승(全勝)이다. 그 요체는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싸워서 이겨야 할 경우에는 상대의 피해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쟁을 하면 생사와 흥망이 갈릴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신중하게 해야 한다. 무조건 싸워서 이기는 백전백승이 능사가 아니다. 직장 상사에게 백전백승하는 사람은 직장을 잃고, 배우자에게 백전백승하는 사람은 가정을 잃는 법이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
"손자는 전쟁을 네 단계, 즉 적의 전략을 꺾는 벌모(伐謀), 외교로 적을 굴복시키는 벌교(伐交), 적의 군대를 치는 벌병(伐兵), 적의 성을 공격하는 공성(攻城)으로 구분하고 이 중 벌모가 최상책, 벌교가 상책, 벌병이 하책, 공성은 최하책이라고 했다. 실제 전투를 벌이기 전에 승리를 거두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손자병법의 핵심을 다섯 개로 정리할 수도 있다. 꼭 해야 하는 싸움은 신중하게 하는 신전(愼戰), 필요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 비전(非戰), 실익 없는 싸움은 거부하는 부전(不戰), 사소한 싸움은 방지하는 지전(止戰), 싸울 때는 먼저 이겨놓고 싸우는 선승(先勝)이다."

송 원장은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가능한 한 피하고, 지켜야 할 것을 온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게 손자의 일관된 철학"이라며 "이는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얻는다'는 경제학 기본 원리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기업들, 正으로 맞서고 奇로 승리하라

―국가와 기업의 전략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국가 간 전쟁에는 전략, 전술, 전투가 있지만, 기업에 필요한 것은 수익을 많이 올리는 전략이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남과 똑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하는 게 기업 경쟁 전략의 핵심이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레드오션'으로 나가야 할 경우, 즉 남들이 이미 하고 있는 것을 할 때는 다른 방법으로 해서 차별화하라고 했다. 레드오션인 카페 사업에서 하워드 슐츠 회장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스타벅스를 운영해 세계적 성공을 거뒀다. 던킨 도너츠, KFC 등도 마찬가지다. 포터는 이를 '독특하게 되려는 경쟁'이라고 했다. 이렇게 하면 기업 경쟁에선 승자가 얼마든지 여럿 나올 수 있다."

―기업 경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손자병법을 꼽는다면.

"기정(奇正)전략이다. 손자는 '정으로 맞서고 기로써 승리를 결정짓는다'고 했다. 한국전쟁 때 낙동강 전선에서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정',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의 후방을 기습한 것은 '기'다. '기'는 상대가 예상하기 어려운 기상천외한 방법이나 기술, 전략 등을 가리킨다. 구글이 직원들에게 근무 시간의 20%를 일상 업무(正)와 관계 없는 일(奇)에 사용하라고 권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 것도 일종의 기정 전략이다.

손자는 또 '물이 항상 높은 곳을 피하고 낮은 곳을 찾아 흐르듯, 승자는 적의 실(實)을 피하고 허(虛)를 찾아서 공격한다'고 했다. 이를 '허실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적을 끌고 다니지 끌려다니지 않는다'고 한 것도 같은 의미다. 세계 휴대폰 회사들이 선두주자인 노키아를 추월하려고 애를 쓸 때, 애플이 스마트폰으로 판을 뒤집어 버린 것이 허실 전략의 한 사례다."

전략10계명. 손자병법

―한국의 리더들은 왜 전략적 사고에 약한가.

"일례로 조선시대에는 적자(嫡子)가 없으면 형의 막내아들이나 동생의 맏아들을 양자로 들였다. 밖에서 낳은 아들이 아무리 많아도 상속권과 제사권은 '붓으로 만든 아들(양자)'에게만 돌아갔다. 실제 아들은 권한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모든 일에 명분을 앞세우다 보니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불필요한 싸움 또는 이겨도 실익(實益)이 없는 싸움에 매달리다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과 균형 발전에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삼성이 아무리 세계 일등 제품을 많이 만들어도 대기업이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고 한국 지식인들은 비판한다. 하지만 대만의 저명 경제학자인 뤄푸치안(羅福全)은 정반대 얘기를 한다. '대만이 중소기업형 경제로 균형 발전했지만 이제는 중국에 기술이 다 넘어가 고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모지에서 무모할 정도의 도전 정신을 발휘해 반도체·자동차 사업에 뛰어들고 글로벌 대기업을 키워낸 한국이 부럽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성과를 잘 인정하지 않는다."

명분에 집착 말아야 전략적 능력 길러져

―전략적 사고 능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에선 매주 금요일엔 고등학교에서, 토요일엔 대학교에서 미식 축구 대회를 하고, 일요일엔 프로 미식축구 경기가 열린다. 이를 두고 드와이트 퍼킨스 하버드대 교수는 '국민 전략 훈련'이라고 했다. 스포츠 경기를 통해 규율과 규칙을 배우고 전략을 익힌다는 것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가르친다. 손자가 강조한 대로 원래 싸움에는 정답이 없다. 물처럼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남과 다른 것을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해야 경쟁력이 살아난다. 그런데 우리는 오로지 정답을 외우는 교육만 한다. 정치인과 사회 지도층부터 마치 정답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교육이 잘못됐고, 기본이 안 돼 있는 것이다."

송 원장은 "전략적 마인드를 갖추려면 유연(柔軟)한 사고가 필수적"이라며 "한국 리더들이 명분에 과도하게 매달리는 게 큰 장애물"이라고 했다.



원문보기: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12/2017051202284.html?newsstand_r#csidx6977b574ea0aa899148deafcb8126c2

돈을 벌려면 왕을 상대하라! 세상을 보는 눈

이번 문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은 누구일까? 누가 뭐래도 최순실일 것이다. 더 앞으로 당기면 최태민까지. 기실 최순실게이트가 터질 때까지 문대통령의 당선가능성은 이렇게까지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심지어 송前장관의 ‘북한인권결의안 문의’ 파문으로 핀치에 몰린적도 있지 않았던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King Making’을 상술에 이용해 일확천금의 거부가 된 사례가 많다.  

먼저 21세기의 천문학적 거부 로스 차일드의 스토리다.



마이어 암스 로스차일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Guetto에 살던 천대받던 유태인이었다. 당시 유태인들은 기독교인들로부터 온갖 천대를 받았으며 법적으로도 군인, 제조업, 곡물거래 등에 종사할 수 없었다. 그나마 좀 사정이 나은 유태인들은 고리대금업에 종사할 수 밖에 없었다.(일본내 재일교포들이 공무원 등 주류사회에 진출하기 보다 빠진코,여자,고리대금업에 종사할 수 밖에 없는 구조와 유사하다)

마이어 로스차일드의 주요 사업원은 귀족을 상대로한 골동품 사업이었다. 마이어는 떠돌이 상인으로 유럽의 주요공국을 돌아다니면서 “부자를 상대로해야 돈을 벌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귀족들과의 연을 만들기에 주력했다. 그는 귀족들 사이에 기념주화와 훈장등의 골동품사업이 유행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전쟁터를 누비며 탈영병, 사망한 군인들의 군복을 뒤져 주화와 훈장을 수집했다. 수집한 주화를 프랑크푸르트의 귀족들에게 팔기위해 그는 주화를 소개하는 일종의 카탈로그를 만든후 고관대작들에게 일일히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리고 시중에 거래되는 가격보다 저렴하게 팔며 귀족들의 신뢰를 얻는데 주력했다. 마이어의 목표는 단순히 주화와 훈장을 귀족들에게 팔아 돈을 버는게 아니었다. 그의 최종목표는 중소공국중 한곳의 왕실과 연을 맺는 것이었다.

마이어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독일 전역을 누비며 수집한 주화와 훈장의 가치를 파악하기 시작했고, 이때 프랑크푸르트 인근 헤센왕국의 빌헬름공이 주화에 관심이 있음을 알게되었다.  마이어는 빌헬름공의 환심을 사기위해 시중가격의 절반가로 주화와 훈장을 제공했고, 이로인해 빌헬름공도 많은 이윤을 얻게된다. 결국 마이어는 빌헬름공의 왕실공급상으로 임명된다.

당시 유럽전역은 중세봉건제가 무너지면서 수많은 전쟁들이 빈번했고, 빌헬름공은 자국의 젊은이들을 훈련시켜 영국 등 각지로 파견하여 돈을 버는 용병사업으로 떼돈을 벌고 있었다. 빌헬름공은 각국으로부터 벌어들인 돈과 국채를 대리인인 로스차일드에게 맡겼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기 힘든 일들을 왕실대리인인 로스차일드의 이름으로 집행했다.

빌헬름공의 재산을 관리하게된 로스차일드는 자신의 다섯 아들을 파리, 런던, 비엔나 등 유럽 각지로 보낸다. 당시 유럽각지는오늘날처럼 단일한 화폐를 쓰지않고 쪼개져있었기에 로스차일드는 다섯명의 아들을 활용하여 환전사업과 무역사업을 하였으며, 아들들로부터 수집된 정보력을 바탕으로 빌헬름공의 자산을 불려주게 되었다.     

로스차일드가 결정적으로 큰돈을 벌게된 계기는 당시 유럽전역을 휩쓸던 나폴레옹전쟁이었다. 나폴레옹에 반대했던 빌헬름공은 대부분의 재산을 로스차일드에게 맡긴후 급히 타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나폴레옹군이 몰려왔을 때 빌헬름공의 재산 대부분을 자신의 저택 지하 2층에 은밀히 숨겨두었던 로스차일드는 온갖 고문과 구타에도 나폴레옹군에게 재산의 소재를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재산 대부분은 나폴레옹군에게 뺏겼으나 빌헬릉공의 재산만큼은 끝까지 지켜냈다. 전쟁이 끝나고 빌헬름공이 돌아왔을 때 로스차일드는 위탁한 돈과 그간의 이자까지 쳐서 그에게 돌려주었다. 로스차일드의 충성심과 신뢰에 감동한 빌헬름공은 “자네에게 앞으로 20년 동안 이 돈에 대한 이자를 받지않을테니 잘 관리해 주게”라며 전적으로 신뢰를 보낸다.

빌헬름공의 이 돈으로 로스차일드는 영국에 보낸 아들 조나단 네이선을 통해 영국국채를 매입하기 시작해 영국의 정재계에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또한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으로 판로가 막힌 영국내 면화와 방직제품들을 헐값으로 사들인후 유럽으로 몰래들여와 엄청난 이윤을 얻게된다. 그는 런던과 파리, 빈, 이태리, 프랑크푸르트에 있던 자신의 아들들을 최대한 활용해 영국 정부를 도와 동맹국들에 보내는 자금 운송과 대부 사업 등을 벌였으며, 이후 영국 전시공채를 대량으로 매입해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패한 정보를 활용해 큰 차익을 남기기도 했다.

쑹홍빙의 '화폐전쟁'을 보면 아들 조나단 네이선 로스차일드가 워털루전투에서 나폴레옹군이 패한 정보를 사전에 취득한후 아직 전쟁의 승패를 모르던 영국 공채거래소에서 급하게 공채를 파는 등 투매를 유도한후 조용하게 대량의 공채를 매입하는 스토리가 잘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음모설에 기초한 영국공채 대량투매 사기사건은 일본인이 쓴 '쩐의 세계사'라는 책에 보면 상당부분 과장되었다고 나오기에 확실한 근거는 없다. 다만, 로스차일드 일가가 빌헬름공의 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음은 부인할수 없다. (로스차일드 일가의 재산이 현재 5경원에 육박한다는 설도 있다.)   


둘째는 진시황제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여불위의 스토리다.

"왕을 세우면 어느 정도의 이문을 얻을까요?"

젊은 시절 여불위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미곡을 매점하면 어느 정도의 이득을 볼까요? (아버지) 글쎄 한 10배의 이득은 보겠지~~
그럼, 보석을 매점하면 어느 정도의 이득을 볼까요? (아버지) 아마 100배의 이득은 보지 않을까?
그렇다면, 만약 한사람을 한나라의 왕으로 세운다면요? (아버지) 글쎄. 그 이문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겠지..


중국 전역이 진초연제위한조 등 7웅으로 분열되어 각축을 벌이던 춘추전국시대말, 여불위는 한나라 양책 출신의 거상이었다. 장사를 하며 이리저리 떠돌던 여불위가 어느날 조나라 수도 한단에 머무를 때였다.

 
이윤을 남기기 위해 각종 정보망을 풀가동했던 여불위는 당시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있던 진나라의 잊혀진 태자 자초를 발견한 순간, 속으로 ‘대박이야’를 외쳤다. 왕위계승전과는 한참 거리가 먼 이름없는 서자 자초에게 조용히 다가간 여불위는 진의 황제로 만들어주겠다는 자신의 야심찬 마스터플랜을 제시한다. (이 부분은 드라마 '랑야방'에서 정왕에게 조용히 다가가 왕을 만들어주겠다는 매장소와 다소 비슷하다) 안국공의 이십여번째 아들로서 그것도 후궁의 자식이라 왕위계승전에는 한참 밀려 볼품없이 조나라에 볼모로 떠돌고있던 자초에게 king을 만들어주겠다는 여불위의 제안은 어차피 그리 손해볼 장사는 아닐 듯 싶었다. 

당시 진나라는 소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소왕의 태자가 비명횡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차순위 서열인 안국공에게 세상의 이목이 집중된다. 그러나 안국공의 정실부인 화양부인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화무십일홍, 권력이란 때가되면 기우는 법. 아무리 안국공의 사랑을 독차지하더라도 아이가 없으면 안국군의 사후에 볼품없이 변할 것임을 잘아는 화양부인의 아픈 속내를 여불위는 정확히 꿰고있었다.

킹메이킹을 향한 여불위의 그랜드마스터플랜은 안국공의 서열 20위쯤 되는 자초를 화양부인의 양자로 들여 적자로 내세운 다음 왕위를 물려받게 한다는 것이었다. 먼저, 자신의 재력을 최대한 활용해 자초로 하여금 조나라의 유명인사들을 만나게 하는 등 인지도를 높이는 작업을 하였다. 조나라와 진나라 조정에 자초에 대한 좋은 평가를 남기기위한 사전정지 작업이었다. 다음 단계로 여불위는 자초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주어 화양부인에게 각종 금은보화를 선물토록 한다.

물론 킹메이킹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만은 않았다. 진나라와 조나라간에 그 유명한 장평대전이 터진 것이다.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온 자초에게 제왕의 길은 고사하고 생사의 위기가 닥친 것이다. 낙담한 자초에게 여불위는 자신의 애를 임신했던 애첩 조희를 주며 달랜다. 이윽고 조나라 왕이 자초를 죽이려할 때 여불위는 미리 매수해둔 조나라 조정의 대신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진나라까지 탈출시킨다. 우여곡절 끝에 진나라 수도 함양에 도착한 자초에게 여불위는 초나라옷을 입혀 갖은 금은보화와 함께 화양부인을 알현케한다. 화양부인이 초나라출신임을 알고 초나라 옷을 입혀 그 마음을 산 것이다. 결국 자초는 화양부인의 수양아들로 들어가 안국공이 죽은후 제위를 물려받아 장양왕이 된다. 물론 여불위는 진나라 승상이 되어 문상후에 봉해졌다.

장양왕은 왕이 된지 3년만에 죽고 여불위와 조희의 자식으로 알려진 태자 정이 왕위에 올랐는데 이가 바로 그 유명한 진시황제다. 그러나 태자정을 대신해 섭정을 하며 ‘여씨춘추’를 발간하는 등 정치문화적으로 엄청난 권력을 휘둘렀던 여불위도 진왕 정이 성인이 되면서 실각하게 된다. 진왕정을 대신해 섭정을 했던 여불위로부터 권력을 뺐아오기 위해 절차 부심하던 진왕정은 ‘자신의 어머니 조희와 여불위가 붙인 대리남편 노애의 역모사건’이 발생하자 결국 여불위까지 연루시켜 유배를 보낸다. 결국 여불위는 유배지에 가지도 못하고 사실상 자신의 아들인 진왕정(진시황)의 압박에 못이겨 독배를 마시고 자살하게 된다.       

권력이란 너무 가까이 가면 불에 타죽고, 너무 멀리가면 얼어죽는 속성이 있다. 신문에서 최태민과 최순실의 스토리를 읽다보면 문득문득 여불위란 인물이 떠오른다. 김우중의 대우그룹과 DJ정권, 노무현정권시절 잘나가던 박연차 태광그룹회장, 박근혜정부와 최순실 그리고 삼성그룹. 큰돈을 벌려면 왕을 상대로 하긴 해야 할텐데, 단 타죽지만 않는다면... 

문재인대통령당선인과 영부인, 그리고 腹水難收를 아는가? 한국 풍경

길고긴 대선가도끝에 마침내 문대통령이 당선되었다. 홍후보의 선전이 오히려 안후보와의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면서 문후보의 당선이  쉬울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미국이 민주당대통령일때는 새누리당이, 공화당대통령일때는 민주당이 대통령당선자를 배출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정치사는 참 신기하기만하다.

 

 

그건 그렇고 문대통령의 당선으로 당연히 김정숙여사와 관련한 episode들이 더욱 관심을 끈다. 역시 내 와이프는 영부인의 프로필과 사진부터 찾아보더니 평범한 동네아줌마 같다면서 '대박났네'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관련기사를 찾아보니, 문대통령이 경희대 법대재학시절 운동권이었을 때 부터 만나서 문대통령이 최루탄을 맞아서 사경을 헤멜때 옆에서 극진히 치료해주는 등 7년간 알콩달콩한 연애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시절 결혼했다는 내용이다. 마치 7080시대 TV드라마를 장악했던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를 방불케한다. 사법시험에 붙은 시골수재와 성악을 전공한 서울처녀의 드라마틱한 만남, 그리고 가히 유쾌하지만은 않은 시대적 아픔을 함께 간직한 청춘시절의 연애스토리들

 

중국의 역사서를 읽다보면 가히 유쾌롭지못한 여자들의 스토리들이 종종 보인다. 이름하여 복수난수, 또는 복수난반잔. “한번 엎질러진 물을 다시 퍼담을수 있는가?”

 

첫째는 태상망 여상, 일명 강태공의 스토리다. 은나라 주왕이 중국 3대 미녀중 하나인 달기에 빠져 민생이 도탄에 빠진 시절, 강태공에게는 馬氏라는 부인이 있었다. 젊을 때부터 동해에서 바늘없는 낚시대를 하릴없이 드리우며 온종일 세월만을 낚았던 강태공, 집안의 생계에는 초연하며 글만 읽어대던 백면서생을 이 馬氏부인은 가만두질 않았다. 어느날 피를 마당에 펼쳐두고 들판에 나간 날 장대같은 소나기가 쏟아졌다. 馬氏부인이 들판일을 마치고 급히 집에 돌아와보니 강태공은 하릴없이 책만 읽고 있었다. “아이고 내 신세야! 글도 좋지만 소나기가 오면 피멍석을 방으로 들여야지, 이 화상아!” 그러나 강태공은 생난리를 치는 마누라의 말은 들은통 만통 그냥 낚시대를 가지고 밖으로 휑하니 나가버린다.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우니 밖에 나가 먹을 거라도 구걸하라며 악을 쓰던 馬氏부인은 그길로 집을 나가 버린다. 우리가 잘아는 스토리대로 강태공은 나이 70이 넘어서 주무왕을 만나 은 주왕을 몰아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고 이후 재상이 되어 금의환향하게 된다. 자신의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던 강태공의 마차앞에 왠 여인이 나타난다. 예전에 강태공을 버리고 떠난 바로 그 馬氏여인이었다. 자신을 다시 받아줄 수 없냐?고 사정하는 여인에게 강태공은 주위 시중들에게 물한잔을 가지고 오라고 한다. 馬氏부인앞에 그 물잔을 엎어 버린 후 이미 엎지른 물을 다시 주워담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울며불며 통곡하는 馬氏부인을 뒤로하고 강태공은 유유히 사라진다. 소위 覆水難收, 覆水不返盆(엎어진 물은 되담기 어렵다!)라는 고사성어다.

 

둘째는 한무제때 주매신이라는 인물이다. 한나라 초기 정치적으로 통일을 했지만 흉노 등 이민족의 침입이 빈번했고 제도도 아직 정비되지않은 시절이라 한무제는 전국적으로 숨어사는 인재들을 갖가지 방법으로 천거하길 좋아했다. 우리가 잘아는 삼천갑자 동방삭과 탁문군과의 연애담으로 유명한 사마상여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오늘날 상해부근인 옛 오나라땅 회계에서 너무나 가난해 나무짐을 해서 장에 내다팔아 간신히 생계를 이어나간 주매신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찢어질 듯이 가난한 삶속에서도 책읽기를 즐겨해 장작더미위에 앉아 큰소리로 글을 읽었다고 한다. 심지어 주매신은 처와 함께 한보따리 짐을 등짝에 지고 장을 가면서도 한손에 책을 들고 다른사람들이 듣건말건 큰소리로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룰황을 외쳤다고 한다. 남들보기 창피했던 주매신의 처가 "책을 읽으면 떡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며 그만하라고 면박을 주자, 주매신은 내 나이 이제 40이니 50이 되면 벼슬길에 올라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겠소?”라고 오히려 마누라에게 큰 소리를 쳤다고 한다. 그러나 찢어질 듯이 가난한 삶에 지친 그의 처는 결국 주매신을 버리고 이웃마을 부잣집 남자의 세컨드가 된다. 충격을 받은 주매신은 얼마안되는 가산을 싸들고 회계땅을 벗어나 한나라의 수도 장안으로 향한다.


결국 나이 오십에 갖은 고생끝에 고향사람의 천거로 한무제를 만난 주매신, 春秋,楚辭를 줄줄이 읊어대던 주매신의 박식함에 반한 한무제는 크게 기뻐하며 결국 그를 회계태수로 임명한다. 마침내 인생 오십줄에 고향 회계태수로 부임하던 날, 주매신은 신임태수를 맞으러 나온 환영인파들 가운데 저멀리서 옛처를 발견한다. 처음에는 신임태수가 자신의 옛 남편이었음을 몰라보던 주매신의 처는 이윽고 대경실색한다. 주매신은 옛 처와 새남편을 자신의 처소로 불러내 그날 저녁 극진히 대접한다.

그러나 한달후 주매신의 옛처는 대들보에 목을 달아 죽었다고 한다.

 

覆水難收! 세상의 여자들이여 각성하라! 당신의 한심해보이는 남편이 미래의 대통령이 될지 어찌 아는가? ㅎㅎ

 


13억분의 1인 시진핑과 랑야방? 세상을 보는 눈


지난해 중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중드 '랑야방'을 몇달동안 재밌게 시청했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인 매장소가 10여년전
억울하게 학살당한 적염군 7만여명의 울분과 원한을 차근차근 풀어가면서도 태자들간의 왕위세습전쟁에서 서열이 한참밀리던 자신의 친구 정왕을 서열 1순위로 올리는 권력쟁취 과정을 생동감있게 그려낸 대작이었다. 물론 간간이 매장소와 그의 약혼녀이자 오래전 정인이었던 예황간의 애틋한 연애장면과 대사들은 약방의 감초처럼 드라마를 더욱 빠져들지 않을수 없게 만드는 요소였지만..
 
2012년 언론에 보시라이 사태가 발발했을때 뭔가 보이지않는 Behind Story가 있었을 꺼라고 짐작은 했지만 언론 기사만 봐서는 도무지 중국내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 우연히도 발견한 책 13억분의 1의 남자, 시진핑에서 그 내막을 조금이나마 보게되었다. 마치 랑야방에서 매장소(임수)가 정왕의 정적이었던 태자와 예왕, 그들의 일파들을 신출귀몰한 전략으로 하나씩 제거해나간 것처럼, 젊은 시절 다른 주자들에 비해 권력세습노선에서 한참 뒤쳐져있던 시진핑도 자신의 정적들을 하나하나 제거해나갔고 그 대척점에 있었던 사건이 바로 '보시라이'사건이었다.

시진핑은 10년간에 걸친 후진타오 VS 강택민간 암투과정에서 나온 최대의 수혜자

저자인 미네무라 겐지(일본인 베이징특파원)는 젊은시절 중앙위원 후보 151명중 151번째로 인기가 없었던 시진핑이 당서열 1위까지 오르는 과정을 나름대로의 논리와 분석력으로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저자는 시진핑 집권이  상해교통방파 Vs 칭화대파간 대결 + 태자방내 암투+ 강택민식 상왕정치를 포괄하는 사건으로 분석하고있다.   

역대 중국의 지도자 선정과정은 현 리더가 차세대 지도자를 점지하고 수년간 각 성의 당서기 역할 수행 등을 통해 그의 리더십과 성품 등을 충분히 검증받는 태자수업 방식이었다. 마치 랑야방에 나오는수년간에 걸친 태자,예왕,정왕 등 태자들간 권력쟁패전과 놀랍도록 흡사하다. 자본주의 국가의 리더 선정과정은 대선 총선 등 선거에 의한 방식이다. 그러나 이 방식의 문제점은 민주주의의 역사가 일천한 국가일 수록 역사의 큰 방향을 보면서 국가의 대계를 설계해나갈 역량을 가진 사람보다는 대중인기 공약을 남발하면서 국민의 순간적인 인기에 영합하는 인물이 대권을 거머쥘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말도안되는 공약을 남발하는 허경영의 인기도를 보라!) 그나마 미국의 경우 기본적으로 민주공화의 양당체제를 기반으로하면서 각 당의 주자를 선발하는 과정이 코커스나 프라이머리에서 그의 사상이나 능력이 1차로 검증되고 다시 대선과정에서 재검증되기에 순간적인 인기에 영합한 다크호스가 나올 확률을 줄이고 있다. 중국은 국무위원들간 치열한 검증을 통과하여 천자자리에 오른 리더가 차세대 후계자를 지명하고 이후 수십년간의 치열한 검증(계파간 암투)과정에서 최고의 인물을 고르는 방식이다. 물론 백두혈통이라는 짜가를 내세워 김일성가의 일당독재가 이어지는 북한의 구시대적 세습방식과는 비교가 되지않는다.      

13억 인구의 거대중국을 이끌고나가는 파워엘리트는 사실상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의 7인의 국무위원(강택민,후진타오때는 9인의 국무위원)이며, 이중 서열 1순위가 당 총서기인 시진핑이다. (서열 2위는 리커창 총리)

한국의 정치지형을 보면 현재진행형인 영호남간 및 북한간 대결구도가 마치 고구려신라백제의 삼국시대 정치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중국도 위촉오 삼국시대의 정치지형간 대결구도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충칭의 당서기였던 보시라이(저우융캉)가 유비의 촉을, 텐진의 리커창(후진타오)이 조조의 위를, 상해 당서기였던 시진핑(강택민)이 손권의 오를 대표한다고 하겠지만 현대판 삼국지는 이것보다 약간 더 복잡하다. 

중국 전통의 상왕정치와 혁명1세대의 아들인 태자당내 파벌, 강택민이 지지하는 상해교통방과 후진타오의 베이징 칭화대파+공청단(공산청년혁명당)간 대결구도 등이 섞여있다. 후진타오 시대에도 군사위자리를 내놓지않고 국무위원에 자신의 수하들을 심어놓고10년이상을 태상왕으로 군림한 강택민. 어찌보면 후진타오와 강택민의 치열한 권력싸움으로 인해 시진핑이 그 수혜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총서기에 물러나서도 군사위 자리는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던 중국에서 후진타오가 자신의 군사위를 포기하는 대신 강택민의 모든 기득권도 털어버리게 했으니 말이다.

시진핑 Vs 보시라이

시진핑과 보시라이는 둘다 아버지가 중국의 부주석이었던 태자당 멤버다. 시진핑의 아버지인 시종쉰은 중국 혁명1세대이자 국무원 부총리를 역임했던 현대중국공산당의 산역사였고, 보시라이의 아버지또한 중국 건국원로인 보이보 부총리로 둘다 혁명1세대의 아들들인 태자당 출신이다. (중국내 보이보의 위상은 모택동, 주은래, 등소평과 맞먹는 혁명 1세대 원로이다) 

보시라이는 키 186Cm의 호남형 인물로 언변이 좋고 친화력이 뛰어난 사업가형 인물이다. 100명 이상의 세컨드를 두고 있다는 설도 있을 정도로 여성편력이 매우 심해 중국 네티즌들은 보시라이를 보치라이(발기하다의 뜻)로 부르기도 한다.

아버지 보이보의 후광으로 공산당에 입당한이후 다롄시장으로 재임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다롄시민들로부터 상당한 인기를 얻는다. 이후 충칭시 당서기 재임시에도 반부패운동(창홍타흑)을 선도하고, 일명 충칭모델을 제시하며 전국적 인기를 구가, 차세대 주자로 부각된다. 정치입문 초기부터 같은 태자당 계열인 시진핑보다 오히려 앞서나가는 선두주자였다. 전 국무위원인 주우융캉의 후원을 받았다.(주우융캉은 강택민의 심복)

보시라이를 밀던 저우융캉 정법위 위원과, 후진타오가 밀던 리커창, 강택민의 상해방과 군부가 지지하던 시진핑간의 치열한 권력암투과정에서 생긴 사건이 지난 2012년 발생한 보시라이사태(심복 왕리쥔이 충칭 미국 대사관에 잠입, 여러가지 국가기밀을 누설하려함)라는 것이다. 마치 최근 우리나라 최순실 사태처럼 당시 보시라이 사건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아내 구카이라이의 영국인 헤이워드와의 염문 및 살해,  6조 가량되는 천문학적 공금 유용, 일개 지방성장인 보시라이가 부하 왕리쥔을 통해 중앙청사 라인을 도청한 등등. 시진핑으로서는 보시라이사태를 계기로 반부패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며 정적인 보시라이와 주우융캉을 마치 굴비엮듯 줄줄이 처리해버린 것이다. 당시 보시라이에 대한 단죄를 놓고 시진핑을 제외한 국무위원간 투표는 4:4였다고 한다. 해외에 출타중인 시진핑이 단죄쪽에 표를 던지면서 결국 보시라이에 대한 형이 확정된다.

국무위원 서열 9위인 저우융캉은 중국의 검경을 통솔하는 정법위 서기로서 상왕 강택민이 심어놓은 후계자이며, 저우융캉이 밀고있는 사람이 보시라이였다. 저자는 2012년  보시라이사태가 발생하기전 저우융캉 정법위서기와 보시라이가 후진타오와 원자바오를 축출하기위한 일종의 쿠데타를 기획하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 뒤에는 상왕 강택민이 버티고 있었다. 강택민은 9인의 국무위원중 쉬차이허우를 군서기에, 저우융캉을 정법위서기에 심어놓고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실상의 태상왕이었다.
  

                                                              후진타오 시절 9인의 국무위원



시진핑 Vs 리커창 (유방 Vs 항우)

리커창은 중국의 최고 명문 베이징대 법대를 1등으로 졸업한 수재중의 수재다. 차를 타고가며 길거리의 차번호 10개를 그대로 암기할 정도로 머리가 좋다는 리커창은 베이징대 법대시절부터 1등을 도맡았다고 한다. 또한 어학시절도 출중하고 사고방식도 서구적 합리주의 성향이 유연한 편으로 후진타오(베이징 칭화대 졸) 전 주석이 밀었던 후계자였다. 일찌기 시진핑보다 훨씬 더 주목받는 차세대 리더였다고 하며, 후진타오이후 중국을 이끌어갈 리더로 주목을 받았었다. 반면 시진핑은 젊은 시절 그리 뛰어난 머리의 소유자도 아니었고 젊은 시절 당서기 시절 인기도 그리 좋지않았다고 한다. (일본기자들과 정치권인사들도 일찌기 리커창을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로 점찍고있었다고 함) 제15회 당대회시 푸젠성 부주석이었던 시진핑은 151명의 중앙위원 후보중 인기투표에서 151위를 차지하는 등 출발은 매우 느린 선수였다.  

시진핑과 리커창을 보면 마치 초한지에 나오는 유방과 항우를 연상시킨다. 패현 한량출신인 유방, 뛰어난 무술실력도 없었고 아무 세력기반이 없었으나 특유의 친화력과 끈기력으로 명문가의 자손인 명장 항우를 야금야금 굴복시키는 스토리는 마치 시진핑의 출세과정과 유사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젊은시절 공자, 순자 등 중국고전에 심취했던 시진핑의 권력쟁패 스토리를 유교의 사상을 담은 무술 태극권과 비유한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꺽는다(以柔克强)
*상대의 힘을 빌려 상대를 친다(借力打人)
*정으로 동을 제압한다(以精制動)

시진핑을 보면 왠지 정중동의 강함이 느껴진다. 중국의 강함이 드러나는 부분은 13억 거대중국을 이끌고갈 리더를 고를때 순간적인 인기에 영합하는 다크호스(보시라이)보다 모두에게 굴욕감을 느낄정도로 지나치게 똑똑한 리더(리커창)보다, 약간 뒤쳐진 듯하면서도 보조를 맞춰갈 수 있는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화합형 인물을 잘 선정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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