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경제위기 재연될까? 세상을 보는 눈

1997년 12월~1998년 IMF, 2007년~2008년 subprime사태, 2018년은?

10년 위기설이 도래하는 2018년은 여러가지 면에서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 이번에도 반복적으로 경제위기가 도래할까?
모처럼 교보문고에 들러서 이와 관련해 판단의 지침이 될만한 책 세권을 정독했다. 

- 바젤3 모멘트, 제4의 물결이 온다, 대한민국 부동산의 미래 -


바젤3 모멘트의 요지는 2018년부터 적용될 바젤3 체제하에서 은행들이 BIS 비율을 기존 14%에서 14.52%로 올리면서 부동산공급과잉 및 가계악성대출, 한계기업 확대 등으로 실업자,자살자 급증 및 기업 연쇄도산 등 총체적인 경제불황이 야기될 것으로 전망하는 다소 부정적인 내용이다. 은행권에서는 새로운 IFRS 9 회계기준을 도입해야하기에 더욱 정량적으로 대출기준을 엄격히 심사하는 등 재정건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것이기에 사회전반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주리라는 전망이다.

모멘트는 민스키모멘트를 말한다. 민스키 모멘트는 미국의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가 주장한 이론으로 과도한 부채 확대에 기댄 경기호황이 끝난 뒤 채무자의 부채상환 능력이 나빠져 결국 건전한 자산까지 내다팔아야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민스키모멘트는 주류 경제학계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조명을 받은 이론으로 이책에서는 2018년 1.1부터 시행되는 바젤3 체제하에서 한계상황에 몰리는 기업과 개인들이 우량한 자산까지 대거 팔면서 연쇄도산하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최근 문재인정부 들어 LTV,DTI 강화에 이은 DSR(개인총부채상환비율)에 기반한 엄격한 대출시스템을 시행하고 있는 것은 최근의 부동산급등을 막아보려는 이전 참여정부식의 부동산 억제책일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내년 바젤3 체제를 앞두고 미리 대비책으로 시행해보려는 정책의지도 곁들어 있어보인다.

저자는 2018년부터 2022년간 약 5년정도 경제충격을 예고하고있다.






'제4의 물결이온다'는 미래학자 최윤식씨가 쓴책으로 이전 2030 미래위기에 이은 또다른 미래학보고서이다. 저자는 2018년 또는 2019년부터 90%이상의 확률로 상당한 경제적 위기가 올 가능성을 예고하고있다. 역시 촉망받는 미래학자답게 전세계적 차원의 정세분석과 경제분석을 곁들여 보다 큰 틀에서 분석을 한후 한국의 경제상황에 대비해 여러가지 변수를 들어 경제충격이 올 확률이 클 것임을 예고하고있다. G2 경제전쟁에서 미국의 소리장도 전략에 따른 대중 경제전 및 중국의 경제충격 가능성 고조, 이에 따른 한국시장의 대내외적 충격 가능성을 진단하고 있다. 중국의 자산시장은 2017년부터 1차적인 충격을 받을 확률이 크며 2019~2020년 90%이상의 확률로 금융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한다. 또한 중국은 외환보유액의 감소 부동산버블의 심화로 인해 몇년 동안 부채가 폭발적으로 상승하여 기준금리 인상시, 가계와 상업영역의 버블붕괴가 일어날 것이라 한다.




그나마 위의 두책보다는 다소 덜 암울한 전망을 내린 책이 대한민국 부동산의 미래다. 저자도 2018년을 위기의 기점으로 잡고있다. 2018년은 대한민국 최고 인구층인 1971년생이 48세가 되는 해이다. 부동산 투자전문가의 입장에서 논지를 편 저자도 2018년부터 인구변동측면에서 2018년부터 우리나라에서 서서히 자산 디플레이션이 올 가능성이 크며, 특히 5년~10년 정도 일본형 장기불황이 올 가능성이 큼을 설파하고 있다. 일본을 증오하면서도 일본의 식민지 산업구조에서 해방된 대한민국의 현재 또는 미래진행형은 일본의 전철과 너무도 유사하다. 소니,파나소닉 등 기라성같은 일본의 전자기업들이 한국의 삼성, LG 등 전자업체들에 따라잡힌이후 제조업 공동화현상이 벌어졌고 인구변동 및 산업계 지각변동으로 장기불황이 왔듯이 한국도 조선,반도체 등에 천문학적 투자를 하고있는 중국의 제조업체들에게 하나씩 잠식당하고 있고 제조업체 공동화현상 등 경기불황이 올 가능성이 큼을 역설하고 있다.

그나마 부동산 차원에서는 다음 두가지로 불황의 파고를 넘어갈 것을 주장한다.

첫째 '서울과 수도권 1기신도시' 부동산에만 집중할 것
둘째, 상가 등 수익형부동산에 집중할 것

일본에서 1980년대 도쿄에서 35~50Km 떨어진 다마신도시와 지바신도시 등 신도시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젊은층이 떠나고 노인만 사는 실버타운으로 변모하면서 90%이상의 집값 폭락이 왔듯이 한국도 서울과 신도시 1기 지역을 제외한 파주,김포,인천,동탄 등 2기 신도시의 부동산가격 폭락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다만 서울은 중국 1%자본가들의 경제수도 집중투자 및 소위 '전국구 투자가'들에 의해 한강인근과 강남 등 핵심지역의 소형아파트와 오피스텔에 집중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셰어하우스 등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른 미래형 임대주택사업을 주시할 것을 강조한다.

최선의 시나리오중 하나는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에 따른 10만명 이상 탈북자들의 서울 등 수도권 집중이전 등이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측면에서 일본형 장기불황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예단하고있다. 

여하튼 세명의 저자들 모두 2018년이후 부동산 또는 경제불황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다. 최윤식씨의 책시리즈는 작년부터 꾸준히 읽어오고 있고 이를 토대로 작년부터 대출부담이 큰 부동산을 매년 2개씩 정리하고 있다.

김장섭씨의 부동산전망은 10년전부터 분석해왔떤 내 생각과 상당히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쉽게 속독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최순실사태와 박근혜정부의 몰락 및 이의 반대급부로 정권을 잡은 문재인정부가 참여정부식의 무자비한 재벌때리기 정책은 지양했으면 좋겠다. 이재용회장의 재판을 앞두고있으나 감정(포퓰리즘)에 치우친 강압책은 현재 또는 향후 5년간의 경제불황 가능성을 놓고볼때 상당한 충격을 야기할 것임은 틀림이 없다.

'대한민국 부동산의 미래'의 저자 김장섭은 현재 기업가들이 처해있는 현실에서 일본의 사례들과 비교하여 제조업 공동화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중국의 일용근로자 인건비가 한달에 30만원 정도라 할때 베트남은 10만원, 북한은 13만원인 반면 현대자동차의 고졸노동자 한달월급은 400만원이다. 거기다 매년 인건비도 올려주어야하고 파업도 자주 발생한다. 1인당 차를 만드는 노동생산성, 연봉을 기준으로 한 명목노동생산성 모두 최악이다. 2000년대 초반이후 현대차는 더이상 한국내 공장을 신설하지않는다. 인도 첸나이 공장, 미 버지니아주 기아차 공장 등 해외공장은 꾸준히 늘리고있다. GM또한 인천부평공장에 대한 신규투자 및 공장확대는 포기한지 오래다. 북한과 중국 등 사회주의권과 연접해서 그런지 강성노조와 일본 수준의 고액의 근로자연봉, 재벌때리기가 만연한 사회풍토 등을 고려해볼때 국내 투자를 꺼리는 것은 당연한 기업가들의 경제논리일 것이다.

지난주 읽었던 경제매거진에서 영안모자의 스토리를 읽은 적이 있다. 전세계 모자업계의 큰손인 영안모자는 모자외에도 가발, 지게차 등 전혀다른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영안모자 회장왈, 한국공장의 인건비가 최근에 미국에서 인수한 클라크지게차 공장보다도 20~30%정도 인건비가 비싸고 연휴가 많아 근무일수도 훨씬 적은 등 노동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방글라데시, 베트남 등 동남아 일대 인건비는 물론 턱도없이 싸고 노동생산성도 뛰어나다고 한다. 글로벌을 상대로한 기업가의 입장에서 볼때 법인세 인상 등 호전적인 한국내 기업투자여건은 전혀 투자할 기분이 안들 것 같다. 

중국이 전세계적 제조업공장기지로 부각되면서 상대적으로 미 디트로이트 등 러스트벨트내 제조업체의 붕괴, 이로인해 금융규제 완화 등 금융정책과 실리콘밸리 등 IT산업으로 미 경제를 살려보려했으나 결국 2008년 서프라임사태가 왔다. 러스트 벨트 등 미 백인 중하류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업고 대통령이 된 트럼프의 제조업 리쇼어링 정책의 성공가능성의 여부를 떠나서 우리도 정권 재창출을 위한 서민층 살리기 정책올인보다는 제조업체 기살리기 정책을 우선적으로 펴야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본 전자 및 제조업체들의 선전으로 몰락한 미국, 한국의 전자 및 제조업체들의 도약으로 불황에 빠진 일본, 중국의 전자 및 제조업체들의 선전으로 서서히 불황의 그늘로 빠져들고 있는 한국이 앞으로 5년 또는 10년이상 우리가 처해져있는 현실인가?
전세계 산업과 경제가 실시간으로 연동되고 있는 이시점에 글로벌 경제전쟁이라는 커다란 포커판에서 메이져들의 전략과 의도를 제대로 읽지못한채 한국의 국내0 상황만 고려한다면 우리도 예전의 필리핀이나 아르헨티나 또는 베네수엘라처럼 쇠락할지도 모른다.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이 기껏해야 공무원 17만명 늘리기 정책이라는데 실소를 금치못한다. 장기적인 시각이라기보다 땜질처방식 포퓰리즘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예전 일 고이즈미 정부처럼 우리도 향후 엄청난 공무원연금 적자 등으로 국가 재정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청년실업 해결책이라는게 고속도로상에 패스트푸드 행상이나 배달업 등이라는 건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발로라고 밖에는 안보인다. 근시안적인 청년수당을 조금더 주고 알바수당 올려받자 현실에 안주하기밖에 더하겠는가? 제2의 네이버,카카오,넷마블기업가들이 나오도록 청년육성프로그램을 만드는게 우선이 아닐까? 핀란드나 이스라엘처럼 왜 우리는 벤쳐기업 육성이나 벤쳐투자자금 지원확대 등으로 가지 않는가? 미 서부의 실리콘밸리나 동부의 실리콘앨리같은 산업벨트를 만들어 젊은이들의 열정과 창의력을 이끌어낼 생각을 하지않는가?  

각설하고, 지금은 몸을 사려하는 시점이다. 콘트라티에프 파동, 주글라파동, 허니컴 모델 등 여러가지 경제이론에 비추어볼때 MB정부와 박근혜정부 10년동안 부동산 완화 또는 확장책이 시행되어 왔다면 앞으로 5년 또는 10여년은 부동산 억제책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2018년이후가 주목된다. 경제위기의 순간에 또다시 투자의 기회가 도래할 까? 지켜볼 일이다.

*콘트라티에프 파동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활동은 상승과 하강과정의 무한반복 즉 경기순환을 겪는다. 이 과정에는 확장기와 수축기의 2단계로 구분되며 이는 다시 회복기, 활황기, 후퇴기, 침체기의 4단계 과정으로 구분된다.










    







부자 연구시리즈)정문술-나는 미래를 창조한다. 한국 풍경

6.25전쟁이후 신흥경제국 '한국'이란 나라에서 부자된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부자가 되기 위해 아니 부자를 꿈꾸기 위해서는 먼저 부자의 마음부터 읽어보아야할 것 같아 동서양의 부자들 스토리를 한권씩 한권씩 읽고 있다. 교보문고의 경제서적 코너에 보면 대체로 1세대 부자들(이병철, 정주영, 김우중, MB)부터 2-3세대 부자들(이건희, 이재용 등)까지 여러 종류의 책이 분류되어있다. 이병철, 정주영 스토리는 도서관에 갈때마다 읽어보지만 다시 읽을때마다 새롭다. '천석꾼은 천가지 고민, 만석꾼은 만가지 고민'이라는 사마천의 고금의 명언도 있지만 큰 재벌들의 스토리를 읽다보면 과연 그 생각의 스케일이 다름에 감탄한다.

먼저 정주영 회장의 스토리를 읽다보면 '성실, 정직(신용), 통찰력, 결단'이란 단어들이 마구마구 떠오른다.
한국동란직후 최대의 난공사였던 '고령교' 공사에서 천문학적 손실을 보았음에도 정부와의 공기 약속 등 신뢰를 잃지않기 위해 모든 재산을 쏟아붇는 그 무모함, 소양강 댐공사의 여파로 만성 침수지역이었던 압구정동 일대의 땅이 더이상 홍수피해를 심하게 받지않을 것으로 보고 그 일대의 습지를 매우 헐값으로 사들인후 수십동의 현대아파트를 지어 압구정 현대아파트 신화를 창조하는  통찰력, 오일쇼크로 국내 경기가 타격을 받자 오히려 오일전쟁의 핵심국 사우디 등 중동으로 진출하여 해외 개척신화를 쓴 스토리, 아산만 간척사업이 조류간만의 차로 난항을 겪자 폐유조선을 끌고와 막는 기발한 발상과 결단력 등등 이미 언론에 너무나 많이 노출된 스토리이기에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겠다.    
 
현재 한국에서 부자된 이들은 다음  몇가지 부류로 나누어볼수 있다.

1. 이병철, 정주영,김우중 등 자수성가형 부자
2. 이재용, 정용진 등 걸출한 재벌 1세의 부를 물려받고 착실한 경영수업을 받은 금수저형 부자
3. 벤쳐신화를 쓰며 재벌의 반열에 오른 게임회사 오너, 네이버, 다음 등 IT 부자들  

이중 정문술회장은 43세의 적지않은 나이에 공무원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매우 보기드문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책을 읽다보니 역시 미래를 보는 혜안이나 도덕성 등 부자는 그냥 되는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든다. 정문술회장이 성공한 이유는 수없이 많겠지만 그의 인생역정을 살펴보니 대체로 세가지 면이 눈길을 끈다.

첫번째는 정도경영이다. 사람을 뽑을때는 학벌보다는 철저하게 그 사람이 가진 자질과 인성 그리고 능력만을 보았다. 중국사회에 만연한 '꽌시' 못지않게 한국도 연의 사회인지라 친척이나 동문친구들의 취업청탁 등이 수없이 많았을텐데 철저히 배격하고 오직 능력위주로 사람을 뽑았다는 점이다. 또한 정치권력의 외압에도 굴하지않았고 오직 벤쳐사업가의 대부로써 사업만 생각할 뿐
정치지망 등 권력욕도 탐하지 않았다. 

둘째는 '남을 이롭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이롭게한다'는 自利利他의 정신이다. 미일 등 선진국들의 독점기술이었던 반도체 전공정 장비인 SMD마운터의 개발을 위해 사원들에게 전권을 주고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않았다는 점이다. 사원이 신바람이 나서 일하면 성과는 저절로 온다는 생각으로 연구원들이 어떤 부품을 사든 회식자리에 법인카드를 펑펑쓰든, 해외출장시 부부동반으로 다녀오든 말든 아낌없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은 기업을 경영하는 자리에서 보통의 인내심이 아니면 견디기 힘든일이다. 오히려 회사돈을 자기돈처럼 펑펑쓰는 연구원들의 낭비벽을 지적하는 충직한 재무이사마저 해고시키는 결단을 내릴 정도로 직원들의 기 살리기에 최선을 다했고, 결국 중소기업이지만 대기업도 개발하기 힘든 SMD마운터를 개발해내고야만다.   
 
셋째는 선양의 미덕이다.
재벌들의 2세 세습이 당연시되는 한국식 자본주의 풍토에서 정문술회장은 자식들에게는 일체 회사의 경영에 간섭하지 않도록했고 각자의 길을 걷게했을 뿐 막대한 부도 되물림하지않았다. 가장 능력있는 경영후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회사가 가장 잘나갈때 과감히 회장자리를 물려주는 그 정신이 실로 놀랍다. 물론 정회장의 은퇴이후 미래산업 주가가 많이 빠져서 속상해할 이도 많겠지만 다른 벼락 졸부들이 필히 따라야할 숭고한 정신이다.

요임금이 자기의 자식이 아둔해 후계자로 적합하지않다고 보고 치수사업 성공으로 온 백성의 지지를 받은 우임금에게 자리를 물려주면서 수천년동안 중국에서는 아름다운 미덕인 선양의 정치철학이 계승되고 있다. 지금 시진핑을 선출해내는 중국의 지도자 옹립과정을 잘 살펴보면, 어찌보면 춘추전국시대 특히 전국시대 칠웅의 제후로부터 천거받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7인의 국무위원으로부터 오랫동안의 국가경영능력을 철저하게 검증받은뒤 천거받는 그리고 모택동, 등소평, 강택민, 호금도에 이어 선양의 방식으로 권력을 세습받는 중국의 정치제도와 선양의 통치철학을 보면 참으로 아름답다는 느낌까지 든다. 반면에 한국은 어떠한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넘어오는 세습독재권력의 북한과 재벌2세, 3세들의 향연장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의 경제계 풍토와는 매우 대비되는 이 시점에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능력있는 후계자에게 모든 걸 넘겨주고 떠나는 정문술회장의 선양의 미덕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나는 미래를 창조한다'는 책 제목에는 단순히 미래산업과 한국 벤쳐사업의 미래를 창조하느 것 외에도 아름다운 기업가 정신이 중의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조선비즈) 손자병법 기정전략 세상을 보는 눈

손자병법을 한 글자로 요약하면 '全'… 안싸우고 몸을 온전히 유지한 채 승리하는 것이 최상책

송병락 원장은 개인·기업·국가를 승자로 만들기 위한 전략을 찾기
송병락 원장은 개인·기업·국가를 승자로 만들기 위한 전략을 찾기 위해 지난 50여 년 동안 손자병법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송 원장이 손자병법의 희귀 판본이 담긴 상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 / 이태경 기자

"전략을 모르고 승자가 되는 것은 방향을 잃고 표류하던 배가 우연히 항구에 안착하는 것만큼이나 드문 일이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이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전략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송병락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자유와창의교육원 원장은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의 말을 빌려 "현대는 상시(常時) 전쟁, 하이브리드 전쟁의 시대"라고 했다. 군사 전쟁이 없어도 경제 전쟁, 소프트파워 전쟁, 사이버 전쟁이 항상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군(軍)과 민(民), 전·후방 경계, 전선(戰線)이 따로 없는 시대라며 전략을 모르고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했다.

송 원장은 경제학자로서 이례적일 만큼 오래 '전략(戰略)'에 천착해왔다. 1960년대 초부터 '손자병법'을 100번 넘게 읽으며 평생의 지침서로 삼았다. 그는 "손자병법은 외국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전략서"라며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은 사람이 손자병법을 읽고 연구해 전략적 사고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서울 여의도 FKI빌딩에 있는 자유와창의교육원 원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인천상륙작전
손자병법의 요체는 '全'

―손자병법은 현대사회에도 유용한가.

"손자병법은 손자가 장군을 하면서 체험한 실전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이후 삼국지 조조, 마오쩌둥의 참모인 궈화러(郭化若), 베트남의 보응우옌잡 장군 등이 계속 실전을 통해 검증·보강·재해석하면서 내용이 더 알차고 풍부해졌다. 손자병법과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각각 동양과 서양을 대표하는 병서이지만 깊이와 범위에서 손자병법이 훨씬 앞선다. 헨리 키신저는 미국이 중국의 국공내전부터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까지 아시아와의 전쟁에서 좌절감을 맛본 것은 손자병법을 잘 몰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손자병법의 요체는 뭔가.

"한 글자로 압축한다면 '온전할 전(全)'이다. 몸을 온전히 유지한 상태에서 적을 이기는 전승(全勝)이다. 그 요체는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싸워서 이겨야 할 경우에는 상대의 피해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쟁을 하면 생사와 흥망이 갈릴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신중하게 해야 한다. 무조건 싸워서 이기는 백전백승이 능사가 아니다. 직장 상사에게 백전백승하는 사람은 직장을 잃고, 배우자에게 백전백승하는 사람은 가정을 잃는 법이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
"손자는 전쟁을 네 단계, 즉 적의 전략을 꺾는 벌모(伐謀), 외교로 적을 굴복시키는 벌교(伐交), 적의 군대를 치는 벌병(伐兵), 적의 성을 공격하는 공성(攻城)으로 구분하고 이 중 벌모가 최상책, 벌교가 상책, 벌병이 하책, 공성은 최하책이라고 했다. 실제 전투를 벌이기 전에 승리를 거두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손자병법의 핵심을 다섯 개로 정리할 수도 있다. 꼭 해야 하는 싸움은 신중하게 하는 신전(愼戰), 필요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 비전(非戰), 실익 없는 싸움은 거부하는 부전(不戰), 사소한 싸움은 방지하는 지전(止戰), 싸울 때는 먼저 이겨놓고 싸우는 선승(先勝)이다."

송 원장은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가능한 한 피하고, 지켜야 할 것을 온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게 손자의 일관된 철학"이라며 "이는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얻는다'는 경제학 기본 원리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기업들, 正으로 맞서고 奇로 승리하라

―국가와 기업의 전략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국가 간 전쟁에는 전략, 전술, 전투가 있지만, 기업에 필요한 것은 수익을 많이 올리는 전략이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남과 똑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하는 게 기업 경쟁 전략의 핵심이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레드오션'으로 나가야 할 경우, 즉 남들이 이미 하고 있는 것을 할 때는 다른 방법으로 해서 차별화하라고 했다. 레드오션인 카페 사업에서 하워드 슐츠 회장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스타벅스를 운영해 세계적 성공을 거뒀다. 던킨 도너츠, KFC 등도 마찬가지다. 포터는 이를 '독특하게 되려는 경쟁'이라고 했다. 이렇게 하면 기업 경쟁에선 승자가 얼마든지 여럿 나올 수 있다."

―기업 경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손자병법을 꼽는다면.

"기정(奇正)전략이다. 손자는 '정으로 맞서고 기로써 승리를 결정짓는다'고 했다. 한국전쟁 때 낙동강 전선에서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정',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의 후방을 기습한 것은 '기'다. '기'는 상대가 예상하기 어려운 기상천외한 방법이나 기술, 전략 등을 가리킨다. 구글이 직원들에게 근무 시간의 20%를 일상 업무(正)와 관계 없는 일(奇)에 사용하라고 권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 것도 일종의 기정 전략이다.

손자는 또 '물이 항상 높은 곳을 피하고 낮은 곳을 찾아 흐르듯, 승자는 적의 실(實)을 피하고 허(虛)를 찾아서 공격한다'고 했다. 이를 '허실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적을 끌고 다니지 끌려다니지 않는다'고 한 것도 같은 의미다. 세계 휴대폰 회사들이 선두주자인 노키아를 추월하려고 애를 쓸 때, 애플이 스마트폰으로 판을 뒤집어 버린 것이 허실 전략의 한 사례다."

전략10계명. 손자병법

―한국의 리더들은 왜 전략적 사고에 약한가.

"일례로 조선시대에는 적자(嫡子)가 없으면 형의 막내아들이나 동생의 맏아들을 양자로 들였다. 밖에서 낳은 아들이 아무리 많아도 상속권과 제사권은 '붓으로 만든 아들(양자)'에게만 돌아갔다. 실제 아들은 권한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모든 일에 명분을 앞세우다 보니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불필요한 싸움 또는 이겨도 실익(實益)이 없는 싸움에 매달리다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과 균형 발전에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삼성이 아무리 세계 일등 제품을 많이 만들어도 대기업이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고 한국 지식인들은 비판한다. 하지만 대만의 저명 경제학자인 뤄푸치안(羅福全)은 정반대 얘기를 한다. '대만이 중소기업형 경제로 균형 발전했지만 이제는 중국에 기술이 다 넘어가 고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모지에서 무모할 정도의 도전 정신을 발휘해 반도체·자동차 사업에 뛰어들고 글로벌 대기업을 키워낸 한국이 부럽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성과를 잘 인정하지 않는다."

명분에 집착 말아야 전략적 능력 길러져

―전략적 사고 능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에선 매주 금요일엔 고등학교에서, 토요일엔 대학교에서 미식 축구 대회를 하고, 일요일엔 프로 미식축구 경기가 열린다. 이를 두고 드와이트 퍼킨스 하버드대 교수는 '국민 전략 훈련'이라고 했다. 스포츠 경기를 통해 규율과 규칙을 배우고 전략을 익힌다는 것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가르친다. 손자가 강조한 대로 원래 싸움에는 정답이 없다. 물처럼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남과 다른 것을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해야 경쟁력이 살아난다. 그런데 우리는 오로지 정답을 외우는 교육만 한다. 정치인과 사회 지도층부터 마치 정답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교육이 잘못됐고, 기본이 안 돼 있는 것이다."

송 원장은 "전략적 마인드를 갖추려면 유연(柔軟)한 사고가 필수적"이라며 "한국 리더들이 명분에 과도하게 매달리는 게 큰 장애물"이라고 했다.



원문보기: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12/2017051202284.html?newsstand_r#csidx6977b574ea0aa899148deafcb8126c2

돈을 벌려면 왕을 상대하라! 세상을 보는 눈

이번 문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은 누구일까? 누가 뭐래도 최순실일 것이다. 더 앞으로 당기면 최태민까지. 기실 최순실게이트가 터질 때까지 문대통령의 당선가능성은 이렇게까지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심지어 송前장관의 ‘북한인권결의안 문의’ 파문으로 핀치에 몰린적도 있지 않았던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King Making’을 상술에 이용해 일확천금의 거부가 된 사례가 많다.  

먼저 21세기의 천문학적 거부 로스 차일드의 스토리다.



마이어 암스 로스차일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Guetto에 살던 천대받던 유태인이었다. 당시 유태인들은 기독교인들로부터 온갖 천대를 받았으며 법적으로도 군인, 제조업, 곡물거래 등에 종사할 수 없었다. 그나마 좀 사정이 나은 유태인들은 고리대금업에 종사할 수 밖에 없었다.(일본내 재일교포들이 공무원 등 주류사회에 진출하기 보다 빠진코,여자,고리대금업에 종사할 수 밖에 없는 구조와 유사하다)

마이어 로스차일드의 주요 사업원은 귀족을 상대로한 골동품 사업이었다. 마이어는 떠돌이 상인으로 유럽의 주요공국을 돌아다니면서 “부자를 상대로해야 돈을 벌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귀족들과의 연을 만들기에 주력했다. 그는 귀족들 사이에 기념주화와 훈장등의 골동품사업이 유행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전쟁터를 누비며 탈영병, 사망한 군인들의 군복을 뒤져 주화와 훈장을 수집했다. 수집한 주화를 프랑크푸르트의 귀족들에게 팔기위해 그는 주화를 소개하는 일종의 카탈로그를 만든후 고관대작들에게 일일히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리고 시중에 거래되는 가격보다 저렴하게 팔며 귀족들의 신뢰를 얻는데 주력했다. 마이어의 목표는 단순히 주화와 훈장을 귀족들에게 팔아 돈을 버는게 아니었다. 그의 최종목표는 중소공국중 한곳의 왕실과 연을 맺는 것이었다.

마이어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독일 전역을 누비며 수집한 주화와 훈장의 가치를 파악하기 시작했고, 이때 프랑크푸르트 인근 헤센왕국의 빌헬름공이 주화에 관심이 있음을 알게되었다.  마이어는 빌헬름공의 환심을 사기위해 시중가격의 절반가로 주화와 훈장을 제공했고, 이로인해 빌헬름공도 많은 이윤을 얻게된다. 결국 마이어는 빌헬름공의 왕실공급상으로 임명된다.

당시 유럽전역은 중세봉건제가 무너지면서 수많은 전쟁들이 빈번했고, 빌헬름공은 자국의 젊은이들을 훈련시켜 영국 등 각지로 파견하여 돈을 버는 용병사업으로 떼돈을 벌고 있었다. 빌헬름공은 각국으로부터 벌어들인 돈과 국채를 대리인인 로스차일드에게 맡겼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기 힘든 일들을 왕실대리인인 로스차일드의 이름으로 집행했다.

빌헬름공의 재산을 관리하게된 로스차일드는 자신의 다섯 아들을 파리, 런던, 비엔나 등 유럽 각지로 보낸다. 당시 유럽각지는오늘날처럼 단일한 화폐를 쓰지않고 쪼개져있었기에 로스차일드는 다섯명의 아들을 활용하여 환전사업과 무역사업을 하였으며, 아들들로부터 수집된 정보력을 바탕으로 빌헬름공의 자산을 불려주게 되었다.     

로스차일드가 결정적으로 큰돈을 벌게된 계기는 당시 유럽전역을 휩쓸던 나폴레옹전쟁이었다. 나폴레옹에 반대했던 빌헬름공은 대부분의 재산을 로스차일드에게 맡긴후 급히 타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나폴레옹군이 몰려왔을 때 빌헬름공의 재산 대부분을 자신의 저택 지하 2층에 은밀히 숨겨두었던 로스차일드는 온갖 고문과 구타에도 나폴레옹군에게 재산의 소재를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재산 대부분은 나폴레옹군에게 뺏겼으나 빌헬릉공의 재산만큼은 끝까지 지켜냈다. 전쟁이 끝나고 빌헬름공이 돌아왔을 때 로스차일드는 위탁한 돈과 그간의 이자까지 쳐서 그에게 돌려주었다. 로스차일드의 충성심과 신뢰에 감동한 빌헬름공은 “자네에게 앞으로 20년 동안 이 돈에 대한 이자를 받지않을테니 잘 관리해 주게”라며 전적으로 신뢰를 보낸다.

빌헬름공의 이 돈으로 로스차일드는 영국에 보낸 아들 조나단 네이선을 통해 영국국채를 매입하기 시작해 영국의 정재계에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또한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으로 판로가 막힌 영국내 면화와 방직제품들을 헐값으로 사들인후 유럽으로 몰래들여와 엄청난 이윤을 얻게된다. 그는 런던과 파리, 빈, 이태리, 프랑크푸르트에 있던 자신의 아들들을 최대한 활용해 영국 정부를 도와 동맹국들에 보내는 자금 운송과 대부 사업 등을 벌였으며, 이후 영국 전시공채를 대량으로 매입해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패한 정보를 활용해 큰 차익을 남기기도 했다.

쑹홍빙의 '화폐전쟁'을 보면 아들 조나단 네이선 로스차일드가 워털루전투에서 나폴레옹군이 패한 정보를 사전에 취득한후 아직 전쟁의 승패를 모르던 영국 공채거래소에서 급하게 공채를 파는 등 투매를 유도한후 조용하게 대량의 공채를 매입하는 스토리가 잘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음모설에 기초한 영국공채 대량투매 사기사건은 일본인이 쓴 '쩐의 세계사'라는 책에 보면 상당부분 과장되었다고 나오기에 확실한 근거는 없다. 다만, 로스차일드 일가가 빌헬름공의 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음은 부인할수 없다. (로스차일드 일가의 재산이 현재 5경원에 육박한다는 설도 있다.)   


둘째는 진시황제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여불위의 스토리다.

"왕을 세우면 어느 정도의 이문을 얻을까요?"

젊은 시절 여불위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미곡을 매점하면 어느 정도의 이득을 볼까요? (아버지) 글쎄 한 10배의 이득은 보겠지~~
그럼, 보석을 매점하면 어느 정도의 이득을 볼까요? (아버지) 아마 100배의 이득은 보지 않을까?
그렇다면, 만약 한사람을 한나라의 왕으로 세운다면요? (아버지) 글쎄. 그 이문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겠지..


중국 전역이 진초연제위한조 등 7웅으로 분열되어 각축을 벌이던 춘추전국시대말, 여불위는 한나라 양책 출신의 거상이었다. 장사를 하며 이리저리 떠돌던 여불위가 어느날 조나라 수도 한단에 머무를 때였다.

 
이윤을 남기기 위해 각종 정보망을 풀가동했던 여불위는 당시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있던 진나라의 잊혀진 태자 자초를 발견한 순간, 속으로 ‘대박이야’를 외쳤다. 왕위계승전과는 한참 거리가 먼 이름없는 서자 자초에게 조용히 다가간 여불위는 진의 황제로 만들어주겠다는 자신의 야심찬 마스터플랜을 제시한다. (이 부분은 드라마 '랑야방'에서 정왕에게 조용히 다가가 왕을 만들어주겠다는 매장소와 다소 비슷하다) 안국공의 이십여번째 아들로서 그것도 후궁의 자식이라 왕위계승전에는 한참 밀려 볼품없이 조나라에 볼모로 떠돌고있던 자초에게 king을 만들어주겠다는 여불위의 제안은 어차피 그리 손해볼 장사는 아닐 듯 싶었다. 

당시 진나라는 소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소왕의 태자가 비명횡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차순위 서열인 안국공에게 세상의 이목이 집중된다. 그러나 안국공의 정실부인 화양부인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화무십일홍, 권력이란 때가되면 기우는 법. 아무리 안국공의 사랑을 독차지하더라도 아이가 없으면 안국군의 사후에 볼품없이 변할 것임을 잘아는 화양부인의 아픈 속내를 여불위는 정확히 꿰고있었다.

킹메이킹을 향한 여불위의 그랜드마스터플랜은 안국공의 서열 20위쯤 되는 자초를 화양부인의 양자로 들여 적자로 내세운 다음 왕위를 물려받게 한다는 것이었다. 먼저, 자신의 재력을 최대한 활용해 자초로 하여금 조나라의 유명인사들을 만나게 하는 등 인지도를 높이는 작업을 하였다. 조나라와 진나라 조정에 자초에 대한 좋은 평가를 남기기위한 사전정지 작업이었다. 다음 단계로 여불위는 자초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주어 화양부인에게 각종 금은보화를 선물토록 한다.

물론 킹메이킹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만은 않았다. 진나라와 조나라간에 그 유명한 장평대전이 터진 것이다.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온 자초에게 제왕의 길은 고사하고 생사의 위기가 닥친 것이다. 낙담한 자초에게 여불위는 자신의 애를 임신했던 애첩 조희를 주며 달랜다. 이윽고 조나라 왕이 자초를 죽이려할 때 여불위는 미리 매수해둔 조나라 조정의 대신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진나라까지 탈출시킨다. 우여곡절 끝에 진나라 수도 함양에 도착한 자초에게 여불위는 초나라옷을 입혀 갖은 금은보화와 함께 화양부인을 알현케한다. 화양부인이 초나라출신임을 알고 초나라 옷을 입혀 그 마음을 산 것이다. 결국 자초는 화양부인의 수양아들로 들어가 안국공이 죽은후 제위를 물려받아 장양왕이 된다. 물론 여불위는 진나라 승상이 되어 문상후에 봉해졌다.

장양왕은 왕이 된지 3년만에 죽고 여불위와 조희의 자식으로 알려진 태자 정이 왕위에 올랐는데 이가 바로 그 유명한 진시황제다. 그러나 태자정을 대신해 섭정을 하며 ‘여씨춘추’를 발간하는 등 정치문화적으로 엄청난 권력을 휘둘렀던 여불위도 진왕 정이 성인이 되면서 실각하게 된다. 진왕정을 대신해 섭정을 했던 여불위로부터 권력을 뺐아오기 위해 절차 부심하던 진왕정은 ‘자신의 어머니 조희와 여불위가 붙인 대리남편 노애의 역모사건’이 발생하자 결국 여불위까지 연루시켜 유배를 보낸다. 결국 여불위는 유배지에 가지도 못하고 사실상 자신의 아들인 진왕정(진시황)의 압박에 못이겨 독배를 마시고 자살하게 된다.       

권력이란 너무 가까이 가면 불에 타죽고, 너무 멀리가면 얼어죽는 속성이 있다. 신문에서 최태민과 최순실의 스토리를 읽다보면 문득문득 여불위란 인물이 떠오른다. 김우중의 대우그룹과 DJ정권, 노무현정권시절 잘나가던 박연차 태광그룹회장, 박근혜정부와 최순실 그리고 삼성그룹. 큰돈을 벌려면 왕을 상대로 하긴 해야 할텐데, 단 타죽지만 않는다면... 

문재인대통령당선인과 영부인, 그리고 腹水難收를 아는가? 한국 풍경

길고긴 대선가도끝에 마침내 문대통령이 당선되었다. 홍후보의 선전이 오히려 안후보와의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면서 문후보의 당선이  쉬울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미국이 민주당대통령일때는 새누리당이, 공화당대통령일때는 민주당이 대통령당선자를 배출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정치사는 참 신기하기만하다.

 

 

그건 그렇고 문대통령의 당선으로 당연히 김정숙여사와 관련한 episode들이 더욱 관심을 끈다. 역시 내 와이프는 영부인의 프로필과 사진부터 찾아보더니 평범한 동네아줌마 같다면서 '대박났네'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관련기사를 찾아보니, 문대통령이 경희대 법대재학시절 운동권이었을 때 부터 만나서 문대통령이 최루탄을 맞아서 사경을 헤멜때 옆에서 극진히 치료해주는 등 7년간 알콩달콩한 연애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시절 결혼했다는 내용이다. 마치 7080시대 TV드라마를 장악했던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를 방불케한다. 사법시험에 붙은 시골수재와 성악을 전공한 서울처녀의 드라마틱한 만남, 그리고 가히 유쾌하지만은 않은 시대적 아픔을 함께 간직한 청춘시절의 연애스토리들

 

중국의 역사서를 읽다보면 가히 유쾌롭지못한 여자들의 스토리들이 종종 보인다. 이름하여 복수난수, 또는 복수난반잔. “한번 엎질러진 물을 다시 퍼담을수 있는가?”

 

첫째는 태상망 여상, 일명 강태공의 스토리다. 은나라 주왕이 중국 3대 미녀중 하나인 달기에 빠져 민생이 도탄에 빠진 시절, 강태공에게는 馬氏라는 부인이 있었다. 젊을 때부터 동해에서 바늘없는 낚시대를 하릴없이 드리우며 온종일 세월만을 낚았던 강태공, 집안의 생계에는 초연하며 글만 읽어대던 백면서생을 이 馬氏부인은 가만두질 않았다. 어느날 피를 마당에 펼쳐두고 들판에 나간 날 장대같은 소나기가 쏟아졌다. 馬氏부인이 들판일을 마치고 급히 집에 돌아와보니 강태공은 하릴없이 책만 읽고 있었다. “아이고 내 신세야! 글도 좋지만 소나기가 오면 피멍석을 방으로 들여야지, 이 화상아!” 그러나 강태공은 생난리를 치는 마누라의 말은 들은통 만통 그냥 낚시대를 가지고 밖으로 휑하니 나가버린다.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우니 밖에 나가 먹을 거라도 구걸하라며 악을 쓰던 馬氏부인은 그길로 집을 나가 버린다. 우리가 잘아는 스토리대로 강태공은 나이 70이 넘어서 주무왕을 만나 은 주왕을 몰아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고 이후 재상이 되어 금의환향하게 된다. 자신의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던 강태공의 마차앞에 왠 여인이 나타난다. 예전에 강태공을 버리고 떠난 바로 그 馬氏여인이었다. 자신을 다시 받아줄 수 없냐?고 사정하는 여인에게 강태공은 주위 시중들에게 물한잔을 가지고 오라고 한다. 馬氏부인앞에 그 물잔을 엎어 버린 후 이미 엎지른 물을 다시 주워담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울며불며 통곡하는 馬氏부인을 뒤로하고 강태공은 유유히 사라진다. 소위 覆水難收, 覆水不返盆(엎어진 물은 되담기 어렵다!)라는 고사성어다.

 

둘째는 한무제때 주매신이라는 인물이다. 한나라 초기 정치적으로 통일을 했지만 흉노 등 이민족의 침입이 빈번했고 제도도 아직 정비되지않은 시절이라 한무제는 전국적으로 숨어사는 인재들을 갖가지 방법으로 천거하길 좋아했다. 우리가 잘아는 삼천갑자 동방삭과 탁문군과의 연애담으로 유명한 사마상여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오늘날 상해부근인 옛 오나라땅 회계에서 너무나 가난해 나무짐을 해서 장에 내다팔아 간신히 생계를 이어나간 주매신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찢어질 듯이 가난한 삶속에서도 책읽기를 즐겨해 장작더미위에 앉아 큰소리로 글을 읽었다고 한다. 심지어 주매신은 처와 함께 한보따리 짐을 등짝에 지고 장을 가면서도 한손에 책을 들고 다른사람들이 듣건말건 큰소리로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룰황을 외쳤다고 한다. 남들보기 창피했던 주매신의 처가 "책을 읽으면 떡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며 그만하라고 면박을 주자, 주매신은 내 나이 이제 40이니 50이 되면 벼슬길에 올라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겠소?”라고 오히려 마누라에게 큰 소리를 쳤다고 한다. 그러나 찢어질 듯이 가난한 삶에 지친 그의 처는 결국 주매신을 버리고 이웃마을 부잣집 남자의 세컨드가 된다. 충격을 받은 주매신은 얼마안되는 가산을 싸들고 회계땅을 벗어나 한나라의 수도 장안으로 향한다.


결국 나이 오십에 갖은 고생끝에 고향사람의 천거로 한무제를 만난 주매신, 春秋,楚辭를 줄줄이 읊어대던 주매신의 박식함에 반한 한무제는 크게 기뻐하며 결국 그를 회계태수로 임명한다. 마침내 인생 오십줄에 고향 회계태수로 부임하던 날, 주매신은 신임태수를 맞으러 나온 환영인파들 가운데 저멀리서 옛처를 발견한다. 처음에는 신임태수가 자신의 옛 남편이었음을 몰라보던 주매신의 처는 이윽고 대경실색한다. 주매신은 옛 처와 새남편을 자신의 처소로 불러내 그날 저녁 극진히 대접한다.

그러나 한달후 주매신의 옛처는 대들보에 목을 달아 죽었다고 한다.

 

覆水難收! 세상의 여자들이여 각성하라! 당신의 한심해보이는 남편이 미래의 대통령이 될지 어찌 아는가? ㅎㅎ

 


13억분의 1인 시진핑과 랑야방? 세상을 보는 눈


지난해 중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중드 '랑야방'을 몇달동안 재밌게 시청했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인 매장소가 10여년전
억울하게 학살당한 적염군 7만여명의 울분과 원한을 차근차근 풀어가면서도 태자들간의 왕위세습전쟁에서 서열이 한참밀리던 자신의 친구 정왕을 서열 1순위로 올리는 권력쟁취 과정을 생동감있게 그려낸 대작이었다. 물론 간간이 매장소와 그의 약혼녀이자 오래전 정인이었던 예황간의 애틋한 연애장면과 대사들은 약방의 감초처럼 드라마를 더욱 빠져들지 않을수 없게 만드는 요소였지만..
 
2012년 언론에 보시라이 사태가 발발했을때 뭔가 보이지않는 Behind Story가 있었을 꺼라고 짐작은 했지만 언론 기사만 봐서는 도무지 중국내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 우연히도 발견한 책 13억분의 1의 남자, 시진핑에서 그 내막을 조금이나마 보게되었다. 마치 랑야방에서 매장소(임수)가 정왕의 정적이었던 태자와 예왕, 그들의 일파들을 신출귀몰한 전략으로 하나씩 제거해나간 것처럼, 젊은 시절 다른 주자들에 비해 권력세습노선에서 한참 뒤쳐져있던 시진핑도 자신의 정적들을 하나하나 제거해나갔고 그 대척점에 있었던 사건이 바로 '보시라이'사건이었다.

시진핑은 10년간에 걸친 후진타오 VS 강택민간 암투과정에서 나온 최대의 수혜자

저자인 미네무라 겐지(일본인 베이징특파원)는 젊은시절 중앙위원 후보 151명중 151번째로 인기가 없었던 시진핑이 당서열 1위까지 오르는 과정을 나름대로의 논리와 분석력으로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저자는 시진핑 집권이  상해교통방파 Vs 칭화대파간 대결 + 태자방내 암투+ 강택민식 상왕정치를 포괄하는 사건으로 분석하고있다.   

역대 중국의 지도자 선정과정은 현 리더가 차세대 지도자를 점지하고 수년간 각 성의 당서기 역할 수행 등을 통해 그의 리더십과 성품 등을 충분히 검증받는 태자수업 방식이었다. 마치 랑야방에 나오는수년간에 걸친 태자,예왕,정왕 등 태자들간 권력쟁패전과 놀랍도록 흡사하다. 자본주의 국가의 리더 선정과정은 대선 총선 등 선거에 의한 방식이다. 그러나 이 방식의 문제점은 민주주의의 역사가 일천한 국가일 수록 역사의 큰 방향을 보면서 국가의 대계를 설계해나갈 역량을 가진 사람보다는 대중인기 공약을 남발하면서 국민의 순간적인 인기에 영합하는 인물이 대권을 거머쥘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말도안되는 공약을 남발하는 허경영의 인기도를 보라!) 그나마 미국의 경우 기본적으로 민주공화의 양당체제를 기반으로하면서 각 당의 주자를 선발하는 과정이 코커스나 프라이머리에서 그의 사상이나 능력이 1차로 검증되고 다시 대선과정에서 재검증되기에 순간적인 인기에 영합한 다크호스가 나올 확률을 줄이고 있다. 중국은 국무위원들간 치열한 검증을 통과하여 천자자리에 오른 리더가 차세대 후계자를 지명하고 이후 수십년간의 치열한 검증(계파간 암투)과정에서 최고의 인물을 고르는 방식이다. 물론 백두혈통이라는 짜가를 내세워 김일성가의 일당독재가 이어지는 북한의 구시대적 세습방식과는 비교가 되지않는다.      

13억 인구의 거대중국을 이끌고나가는 파워엘리트는 사실상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의 7인의 국무위원(강택민,후진타오때는 9인의 국무위원)이며, 이중 서열 1순위가 당 총서기인 시진핑이다. (서열 2위는 리커창 총리)

한국의 정치지형을 보면 현재진행형인 영호남간 및 북한간 대결구도가 마치 고구려신라백제의 삼국시대 정치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중국도 위촉오 삼국시대의 정치지형간 대결구도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충칭의 당서기였던 보시라이(저우융캉)가 유비의 촉을, 텐진의 리커창(후진타오)이 조조의 위를, 상해 당서기였던 시진핑(강택민)이 손권의 오를 대표한다고 하겠지만 현대판 삼국지는 이것보다 약간 더 복잡하다. 

중국 전통의 상왕정치와 혁명1세대의 아들인 태자당내 파벌, 강택민이 지지하는 상해교통방과 후진타오의 베이징 칭화대파+공청단(공산청년혁명당)간 대결구도 등이 섞여있다. 후진타오 시대에도 군사위자리를 내놓지않고 국무위원에 자신의 수하들을 심어놓고10년이상을 태상왕으로 군림한 강택민. 어찌보면 후진타오와 강택민의 치열한 권력싸움으로 인해 시진핑이 그 수혜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총서기에 물러나서도 군사위 자리는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던 중국에서 후진타오가 자신의 군사위를 포기하는 대신 강택민의 모든 기득권도 털어버리게 했으니 말이다.

시진핑 Vs 보시라이

시진핑과 보시라이는 둘다 아버지가 중국의 부주석이었던 태자당 멤버다. 시진핑의 아버지인 시종쉰은 중국 혁명1세대이자 국무원 부총리를 역임했던 현대중국공산당의 산역사였고, 보시라이의 아버지또한 중국 건국원로인 보이보 부총리로 둘다 혁명1세대의 아들들인 태자당 출신이다. (중국내 보이보의 위상은 모택동, 주은래, 등소평과 맞먹는 혁명 1세대 원로이다) 

보시라이는 키 186Cm의 호남형 인물로 언변이 좋고 친화력이 뛰어난 사업가형 인물이다. 100명 이상의 세컨드를 두고 있다는 설도 있을 정도로 여성편력이 매우 심해 중국 네티즌들은 보시라이를 보치라이(발기하다의 뜻)로 부르기도 한다.

아버지 보이보의 후광으로 공산당에 입당한이후 다롄시장으로 재임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다롄시민들로부터 상당한 인기를 얻는다. 이후 충칭시 당서기 재임시에도 반부패운동(창홍타흑)을 선도하고, 일명 충칭모델을 제시하며 전국적 인기를 구가, 차세대 주자로 부각된다. 정치입문 초기부터 같은 태자당 계열인 시진핑보다 오히려 앞서나가는 선두주자였다. 전 국무위원인 주우융캉의 후원을 받았다.(주우융캉은 강택민의 심복)

보시라이를 밀던 저우융캉 정법위 위원과, 후진타오가 밀던 리커창, 강택민의 상해방과 군부가 지지하던 시진핑간의 치열한 권력암투과정에서 생긴 사건이 지난 2012년 발생한 보시라이사태(심복 왕리쥔이 충칭 미국 대사관에 잠입, 여러가지 국가기밀을 누설하려함)라는 것이다. 마치 최근 우리나라 최순실 사태처럼 당시 보시라이 사건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아내 구카이라이의 영국인 헤이워드와의 염문 및 살해,  6조 가량되는 천문학적 공금 유용, 일개 지방성장인 보시라이가 부하 왕리쥔을 통해 중앙청사 라인을 도청한 등등. 시진핑으로서는 보시라이사태를 계기로 반부패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며 정적인 보시라이와 주우융캉을 마치 굴비엮듯 줄줄이 처리해버린 것이다. 당시 보시라이에 대한 단죄를 놓고 시진핑을 제외한 국무위원간 투표는 4:4였다고 한다. 해외에 출타중인 시진핑이 단죄쪽에 표를 던지면서 결국 보시라이에 대한 형이 확정된다.

국무위원 서열 9위인 저우융캉은 중국의 검경을 통솔하는 정법위 서기로서 상왕 강택민이 심어놓은 후계자이며, 저우융캉이 밀고있는 사람이 보시라이였다. 저자는 2012년  보시라이사태가 발생하기전 저우융캉 정법위서기와 보시라이가 후진타오와 원자바오를 축출하기위한 일종의 쿠데타를 기획하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 뒤에는 상왕 강택민이 버티고 있었다. 강택민은 9인의 국무위원중 쉬차이허우를 군서기에, 저우융캉을 정법위서기에 심어놓고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실상의 태상왕이었다.
  

                                                              후진타오 시절 9인의 국무위원



시진핑 Vs 리커창 (유방 Vs 항우)

리커창은 중국의 최고 명문 베이징대 법대를 1등으로 졸업한 수재중의 수재다. 차를 타고가며 길거리의 차번호 10개를 그대로 암기할 정도로 머리가 좋다는 리커창은 베이징대 법대시절부터 1등을 도맡았다고 한다. 또한 어학시절도 출중하고 사고방식도 서구적 합리주의 성향이 유연한 편으로 후진타오(베이징 칭화대 졸) 전 주석이 밀었던 후계자였다. 일찌기 시진핑보다 훨씬 더 주목받는 차세대 리더였다고 하며, 후진타오이후 중국을 이끌어갈 리더로 주목을 받았었다. 반면 시진핑은 젊은 시절 그리 뛰어난 머리의 소유자도 아니었고 젊은 시절 당서기 시절 인기도 그리 좋지않았다고 한다. (일본기자들과 정치권인사들도 일찌기 리커창을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로 점찍고있었다고 함) 제15회 당대회시 푸젠성 부주석이었던 시진핑은 151명의 중앙위원 후보중 인기투표에서 151위를 차지하는 등 출발은 매우 느린 선수였다.  

시진핑과 리커창을 보면 마치 초한지에 나오는 유방과 항우를 연상시킨다. 패현 한량출신인 유방, 뛰어난 무술실력도 없었고 아무 세력기반이 없었으나 특유의 친화력과 끈기력으로 명문가의 자손인 명장 항우를 야금야금 굴복시키는 스토리는 마치 시진핑의 출세과정과 유사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젊은시절 공자, 순자 등 중국고전에 심취했던 시진핑의 권력쟁패 스토리를 유교의 사상을 담은 무술 태극권과 비유한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꺽는다(以柔克强)
*상대의 힘을 빌려 상대를 친다(借力打人)
*정으로 동을 제압한다(以精制動)

시진핑을 보면 왠지 정중동의 강함이 느껴진다. 중국의 강함이 드러나는 부분은 13억 거대중국을 이끌고갈 리더를 고를때 순간적인 인기에 영합하는 다크호스(보시라이)보다 모두에게 굴욕감을 느낄정도로 지나치게 똑똑한 리더(리커창)보다, 약간 뒤쳐진 듯하면서도 보조를 맞춰갈 수 있는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화합형 인물을 잘 선정한다는 점이다.



중국, 사드때리기, 사회제국주의 세상을 보는 눈

사드배치 결정이후 중국의 노골적인 사드때리기 보복이 노골화되고있다. 초등학교 등 관을 동원한 한국상품 불매운동, 관용언론들의 한류 또는 한국상품 비판논조 등 어찌보면 치졸하기 그지없는 덩치만 큰 大國의 품격없는 행보다. 일찌기 동북공정에서 이미 중국의 배타적 민족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국제사회를 주도할 G-2 국가로서는 수준이 한참 떨어진다.

일찌기 서양의 많은 학자들이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이후 공산주의의 도미노식 몰락이 이어질때 중국의 배타적 민족주의 기류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예견했다. 공산주의라는 절대적 이데올로기가 붕괴되고, 년 10%대의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이 이어지면서 필연적으로 따라올 빈부격차문제, 도농격차, 소수민족 분쟁 및 이촌향도(도시집중화)에 따른 도시내 노동자의 빈한한 삶과 박탈감을 대체하기위한 정부차원의 이데올로기 작업이 본격화될 것인데, 바로 중화민족주의의 발흥이었다.

1990년대 중국정부의 민족주의 고취노력은 크게 두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시간과 공간의 왜곡작업을 통한 중화민족주의 발흥.

즉, 시간적으로는 중국의 역사를 기존의 삼천년에서 5천년으로 만드는 반만년 무구한 역사를 만드는 작업으로 단대공정이 그것이다. 내가 초등학교때만 하더라도 중국의 최초왕조는 은으로 시작해 주나라, 춘추전국시대, 진한,오호16국,수당송원명청이었다.
그 이전에는 전설의 왕인 황제와 요순임금 정도였다. 이렇게 될 경우 3000년 정도 역사밖에 안되며 이웃의 조그만 한국의 5천년 역사보다도 짧다. (물론 우리나라의 5천년도 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이 나라를 세운이후 1500년을 통치했다고 하니 사료에는 없는 신화속 역사를 근거로 내세웠을 뿐이다.) 그리하여 전설속 왕조인 하나라와 상나라(은나라)를 부활시켰다. 이름하여 하상주단대공정, 고대문명탐원공정이 시작되었다.

둘째, 공간에 대한 역사왜곡작업은 남방공정, 서남공정, 서북공정, 동북공정, 해양변강공정 등으로 지금도 계속되고있다. 이중 고구려사 왜곡으로 우리나라와 갈등을 빚은 동북공정은 1997년~2000년사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역사는 승자의 작업이라고 했던가?
조선시대이전만해도 고구려는 한반도에 위치한 삼국중 하나로 중국을 비롯, 일본 등 이웃국가들로부터도 한민족의 역사로 당연히 인식되었다. 그러나, 고구려영토의 2/3이상이 중국에 있으니 중앙정권-지방정권식의 논리로 설명하는 중국의 억지주장에도 설땅이 없다. 밉기도 하지만 중국이 잘하는 건 매우 전략적으로 조직적으로 공정작업을 진행해왔다는 것이다.

일찌기 등소평은 UN연설에서 "중국은 사회제국주의로 가지않을 것이며, 이럴 경우 묻 개발도상국들로부터 지탄을 받을 것이다"라고 연설을 했으나, 전형적인 도광양회(빛을감추고 힘을기른다)식 언변일 뿐이다.

모택동시대의 중국은 1949년 신장위구르를 침공해 1955년 공식적으로 자치구로 편입했고, 1950년 티벳의 인민을 해방시킨다는 명분하에 전격적으로 침공해 흡수하였다. 이후 등소평시대에는 1979년 베트남을 해방시킨다는 명분으로 베트남을 침공했으나, 패퇴되고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가 부르는 월남을 아직도 '남월'로 부르며 제국주의적 발톱을 숨기지않고있다.

1990년대이후에는 체계적인 공정작업을 통해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행보들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려하고있다. 앞으로도 동북공정작업에서 알수있듯이 북한체제가 붕괴하면 언제라도 흡수하려는 이데올로기와 행보를 보일 것임은 자명하다.

물론, 시진핑시대에는 우리가 잘알고 있듯이 해양변강공정작업에 이어 해양진출을 본격화하면서 일본과는 센카쿠열도(조어도) 분쟁, 베트남,필리핀과는 서사군도,남사군도 분쟁을 노골화하고있다. 물론 동사군도,남사군도, 서사군도 일대가 해양자원의 보고라는 막대한 경제적 가치도 있겠지만 중국의 전형적인 사회제국주의 시도라고 봐야할 것이다.



지금은 중국정부가 우리와 서해조업문제와 사드문제로 갈등을 빚고있지만, 중국의 사회제국주의적 행보로 볼때 앞으로 이어도를 놓고 갈등을 빚을 확률이 높다. 한국인들은 일본과의 독도갈등에는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있으나, 이어도와 관련한 중국과의 분쟁에는 상대적으로 긴장하지않고있다. 독도는 사실 우리가 실효지배하고있기에 그리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일본정부와 언론이 아무리 떠들어도 그냥 무시하면 된다. 그러나 이어도문제는 틀리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해양영토 확장을 노골적으로 부르짓고있기에
한중관계가 악화될 경우 앞으로 더욱 이슈화될 소지가 높다. 




중국지도부입장에서는 미국의 위협보다 중국의 노동자,농민,소수민족이 더 무섭다. 관민이 함께 외치는 배타적인 중화민족주의에 바탕한 사드때리기는 일회성으로 끝나지않을 것이다. 도광양회에 이은 유소작위적 행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미국을 끌어들여이이제이가 아닌 이강제강 전략을 취할 것인가? 차기 신정부가 아무 전략도 대책도 없이 사드배치 철회 등 중국정부에 납작엎드리기식 행보를 하지않을까 두렵다.


 

삼성, 재벌 그리고 인도 마르와리상인 세상을 보는 눈

최순실게이트, 박대통령 탄핵, 그리고 이재용 회장의 뇌물수수죄 연관성으로 온나라가 벌집쑤셔놓은 듯 뒤숭숭하다. 더구나 5.9 대선을 앞두고있어 당분간 삼성,SK그룹 등 재벌을 둘러싼 뉴스들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듯하다. 재벌의 정경유착문제를 어떻게 봐야할까? 준조세성격의 천문학적 기부금들을 정권과 재벌간의 Give & Take 차원식 해법으로 이해해야할까?  재벌은 과연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유한 현상일까?


수년전 우연한 기회에 인도를 다녀온 적이 있다. 뉴델리, 타지마할, 방글라데시 다카 등을 돌아보고 왔다. 11억에 육박하는 인구대국답게 거리마다 사람들로 넘쳐났고, 열대지방 특유의 눅눅함, 까무잡잡하면서도 느릿느릿한 인도인들, 공중화장실가는 길마다 널린 소똥들, 파리가 날라다녀 음식먹기가 곤란했던 식당들, 진동이 너무심해 멀미를 심하게 느껴 중간에 내리고만 싶었던 고속버스, 느려터진 호텔인터넷, 수시로 정전되는 사무실, 거품샤워중 물이 끊겨져 당황했던 추억들은 과히 좋지 못한 추억들로 남아있지만 글로벌 경제전쟁에서 중국에 필적하는 경제대국으로 성장중인 인도는 결코 무시할수 없는 존재다.   

 

물론 인도에 대한 짧은 여행경험으로 인도전체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는 쉽지않지만 인도경제를 큰 틀에서 바라보면 우리처럼 재벌(기업가집단)이 장악하고 있다고 볼 수 있고, 이들 기업가집단중 선두를 달리고 있는 상인그룹이 바로 마르와리 상인이다. 

세계 5대 부자중 한명인 락쉬미 미탈(아르셀로미탈그룹 회장), 인도 최대 글로벌기업 아디티 야비렐라 등이 모두 마르와리들이다.


마르와리 상인이 누군가? 인도 북부의 라자스탄 사막지대의 척박한 환경에서 활동했던 마르와리 상인들은 지금은 인도 전역에 걸쳐 약 3,000만명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들은 우리의 보부상이나 조선시대 송상, 만상과 같이 인도 전역에 걸쳐 자기네만의 결연의식과 자금줄을 활용해 지역경제계를 휘어잡고있다. 즉, 인도사회가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 등 크게 4개의 카스트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사실 그 안에는 수천개의 자띠(결연체)로 구성되어 있다. 자띠는 영어의 Community로 번역되기도 하고 우리의 혈연, 지연공동체와 비슷한 개념이나 이보다는 훨씬 더 결속적인 단어다.


마르와리 상인들은 인도 전역에서 고향과 수천킬로 떨어진 지역에서 장사를 하며, 고향에서 같은 마르와리 상인이 오면 자기들만의 신용으로 돈을 대부해주고 숙소도 제공해준다. 이로 인해 신출내기 마르와리 상인은 천리타향에서도 쉽게 기반을 잡을 수 있으며, 만약 돈을 갚지않는다든가 같은 자띠의 일원에 명예를 훼손하게되면, 그 자띠 전체 그룹부터 추방당하게 된다.


현재 마르와리 상인은 인도전역에 산재한 네트워크와 상호 연대로 인도 전체의 산업계 및 금융계, 유통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마르와리 상인을 비롯한 구자라티상인, 파르시 상인 출신의 대부호들은 인도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우리처럼 정권이 바뀔때마다 대선자금 스캔들 등으로 타도의 대상(?)이 되거나 온 국민들의 지탄을 받지않는다. 물론 마르와리 상인들이 사회에 엄청난 기부활동을 하는 등의 이유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카스트에 익숙한 인도인들에게서 마르와리상인들을 비롯한 거대 상인그룹들은 선망의 대상이지 타도의 대상은 아니다. 


재벌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다. 인도를 비롯해 전세계 어디에나 있고, 우리나라같이 시장규모가 작은 나라에서는 오히려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정권이 바뀔때마다 되풀이되는 재벌때리기, 이제는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한다. 


국제정치사에서 풀리지않는 수수께끼가 두가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전통적으로 돈을 숭상하는 중국인들로 가득찬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는 점, 둘째는 전통적으로 평등주의가 매우 강한 한국이 자본주의 국가가 되었다는 점이다.


조선초 10%에 불과하던 양반그룹이 18세기말에는 전국민의 80프로가 양반이 된 나라, 평민을 일컫는 상놈을 욕으로 쓰는 나라, 재벌을 그리도 미워하면서도 간절하게 삼성에 입사하려는 대학생들. 대한민국은 참 알수 없는 나라다.   

 





 



단군, 삼한, 조선, 고구려의 의미 세상을 보는 눈

어릴때부터 역사수업을 받으며 종종 느꼈던 궁금증

1. 단군은 누구이며 직책인가? 한명의 인물인가?
2. 朝鮮의 뜻은 무엇인가?
3. 三韓, 즉 마한변한진한의 韓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4. 고구려, 고려의 뜻은 무엇인가?

1. 단군은 누구인가?
흔히 역사책에는 기원전 2333년에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나라(고조선)를 세웠고 이후 1500년간 통치하였다는 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물론 환웅,천부인,웅녀 등 다분히 신화적인 스토리가 가미되어 실체가 없는 인물이 단군인데, 그렇다면 단군은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인가? 아니면 1500년간 조선을 다스리던 왕을 일컫는 직책인가?

여러가지 설이 분분하지만, 내가 보기에 단군은 하늘을 의미하는 당골, 당그리, 탱그리 등 고대 북방유목민족들의 용어를 음차한 것으로 보인다. Tengri(탱그리)는 지금도 몽골어로 하늘 또는 영혼을 의미하는 단어이며,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과거 징기스칸이 훝고지나간 유목민국가들에서 흔히 쓰이는 단어다. 징기스칸은 출정을 앞두고 탱그리에게 기도하는 의식을 가졌다고 한다.
 
현재 카자흐스탄의 화폐단위가 텡게이고,  아래 사진처럼 카자흐스탄 항공사잡지 이름도 하늘을 의미하는 탱그리이다.

사학계 일각에서는 바이칼호수 일대에서 붉은 가지를 가진 버드나무를 ’조선류‘ 또는 '쥬신류'라고 부르는데, 한반도에서 이곳까지 즉 북방유목지대 전체를  ‘쥬신(조선) 제국’으로 불렀다고 한다. 즉 고조선의 조선은 당시 '쥬신'을 한자로 음차한 것으로 봐야한다.
(일제시대때 상당수 우리나라 순수 고을이름들을 한자로 음차한 사례를 보면 이해가 된다.) 
다시말해 단군이라는 용어는 북방바이칼호에서 만주평원일대까지 걸쳐있던 쥬신제국을 통치하던 탱그리를 한자로 음차한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고조선때 단군이 1500년간 통치했다는 기록들은 북방유목국가에서 하늘, 천신의 아들 왕을 일컫는 용어인 탱그리를 한자로 음역한 것일 것이다.

다만, 탱그리가 우리나라 말중에는 당골이나 ㅆㅂ탱그리 등 다소 비하적인 말로 잔재하고 있음이 특이하다.

2. 朝鮮의 뜻도 마찬가지로 쥬신, 숙신과 비슷한 음차어로 보면될 것 같다. 굳이 조선을 "조용한 아침의 나라" "동방의 해뜨는 나라" 등으로 억지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머리만 아플뿐이다.

3. 三韓, 즉 마한변한진한의 韓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최근 소설가 김진명씨가 쓴 '한국사 X파일'을 보니, 삼한의 韓의 의미를 찾기위해 중국의 사서를 뒤져서 춘추전국시대의 韓, 또는 사서삼경에 나오는 韓 등으로 유추하고 있는데, 본인이 볼때 삼한은 당시 북방유목민족들의 용어인 칸의 나라라는 의미로 봐야할 것같다. 즉 칸, 한 등은 북방유목민족들 사이에서 왕을 의미하는 단어이며, 마한변한진한은 마칸(또는 마한)변칸,진칸을 한자로 음차한 것으로 봐야하며 유사음중에서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후국중하나인 韓을 차용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바이칼 호 인근 민족들의 공통된 신은 불한신이다. ’불‘은 밝음, 해 등을 뜻하고, ’한‘은 크다라는 뜻이다. 후에 징기스칸의 칸처럼 북방유목민 국가들에서 '한' 또는 '칸'은 대왕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였다. 따라서 삼한 또는 대한민국의 韓은 왕을 의미하는 칸의  한자식 음차어로 봐야할 듯하다.

4. 고구려, 고려의 뜻은 무엇인가?
터키는 자신의 조상이 바이칼호 일대에서 발원한 몽골-흉노족의 일원이라고 밝힌다. 일부 사학자들은 바이칼호 인근의 민족들중에 부리얏족, 코리족들이 있으며, 지금도 남아있는 코리족들은 고구려,고려 즉 코리아로 변형되었다. 터키인들은 코리아족을 자신들과 동일한 민족이라고 얘기하며, 6.25 참전시에는 형제국에 참전하러가자고 했다고 한다. 

'쿠리'는 흔히 19~20세기 미국에서 일하던 중국인 노동자들을 비하하는 용어인데, 사실은 '쿠리'의 어원이 '고려'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당나라는 고구려 평양성을 함락시키고 당시 평양의 백성들 30여만명을 당의 장안까지 강제로 끌고갔다고 한다. 당시 수십만명의 고구려유민들이 장안에 도착했을때 천리길을 가면서 제대로 씻지도 못했을테니 얼마나 냄새가 심했겟는가? 이들 유민들을 중국인들이 비하하며 부른 용어가 고려인을 의미하는 '쿠리'였고 노동자 천민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였다는 것이다.

미국 북서부를 여행하다보면 참 신기한 장면들을 많이 본다. 아래 사진들은 미 북서부 워싱턴주에 위치한 마운틴 레이니어 인근에 있는 장승들이다. 시애틀이나 올림푸스, 포틀랜드 등 일대를 여행하다보면 이러한 형태의 장승들을 종종 보게되는데 마치 우리나라 시골길에 서있는 장승들과 흡사하다.
 
더욱 신기한 것은 시애틀이나 포틀랜드 일대에 살던 인디언들이 우리처럼 도토리를 줏어다가 묵을 해먹는다는 것이다. 와이프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중에 소피아라는 백인이 있다. 우리집에도 종종 놀러오곤 했는데, 한인마트에서 산 묵을 보고는 인디언들이 도토리로 해먹는다는 것이다. 이들 인디언들을 보면 과거 빙하기때 또는 고구려가 망할무렵 베링해를 건너서 북아메리카로 이동한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믿거나 말거나.























증오를 없애고 치유를 시작하라! 세상을 보는 눈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종종 미국에서 가장 인기없는 대통령중 한명으로 치부된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결국 낙마(하야)하던날, 당시 부통령이었던 포드 대통령은 미국 최초로 선거없이 대통령이 된 최초의 인물이 된다. 그러나 닉슨이 하야한후 1달되던날 미국의 대통령인 그는 닉슨 전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발표한다. 물론 야당과 국민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다. 취임당시 70%를 오르내리던 그의 지지율은 사면발표직후 40% 밑으로 곤두박질친다.

그가 국민들의 인기를 바랬으면 닉슨대통령을 더욱 철저히 조사하여 파멸로 이끌고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분열된 America를 원하지 않았다. 닉슨의 하야 한달후 조건없는 사면을 통해 비록 그의 대국민 지지도는 하락할 지라도 미국의 통합과 발전을 위한 대국적 견지에서 상처입은 미국을 치유하려했다. "증오를 없애고 치유를 시작하라."

우리나라 같으면 정권이 바뀌면 항상 상대당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이 뒤따랐다. DJ,이회창 등 대선에 실패한 후보가 취한 최초의 행보는 미국 등 외국으로 도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국내에 있으면 무자비한 응징이 기다리고 있기때문이다. 노태우대통령때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백담사 유폐, YS 정권당시 노태우,전두환대통령 감옥행, MB정부시절 노무현대통령 스캔들조사 등등. 북한의 경우에도 김정은 집권후 장성택 처형, 김정남 암살 등 정적에 대한 철저한 응징이 뒤따랐다.
 
미국의 위대함은 여기서 나오는 것 같다. 일시적인 대중적 인기가 아니라 분열없는 미국, 상처받은 미국을 치유하기 위한 최선의 수를 지도자가 고민하는 것이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그리 영민한 대통령은 아니었던가 싶다. 그러나 미국의 아픔을 치유할 위기의 순간에 성실하고 솔직한 포드는 역할을 다하였다. 
 
제럴드 포드 전대통령의 장례식때 추도사를 한 사람은 대선과정에서 한때 그의 최대 정적이었던 지미 카터대통령이었다.
 
탄핵이 선고된 지난 며칠 뜻하지않게 사망한 사람만 3명 나왔다. 청와대를 떠나는 아쉽지만 P의 멋진 고별사를 원했으나, 역시 미국과 같은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식의 성경 Style식의 말은 사회분열만을 조장시킬 뿐이다. 차기 대통령은 제럴드 포드처럼 일시적인 국민들의 인기보다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대승적 판단을 내리는 인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설령 최순실게이트의 진실이 어떠하든, 북한인권법 통과시 북한에 물어봤다는 내용의 도서출판으로 궁지에 몰린 민주당의 차기승부수로 나왔든, 이제는 진실을 묻어두고 오로지 분열해소와 위기극복에 매진하는 후보가 나왔으면 좋겠다. 

증오를 없애고 치유를 시작하라! 역시 大國은 하루만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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